글 제목이 과한가요, 아니면 지나치게 단정적인가요. 한번 뜯어볼까요. 이민호군은 지난 2017년 11월 9일 현장실습 나갔던 제주시 음료공장에서 홀로 작업하다 기계에 몸이 끼어 숨졌습니다. 홍정운군은 지난달 6일 현장실습에서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 제거 작업을 하다 변을 당했습니다. 물이 무서워 수영도 못하는 학생이었지만, 몸에 맞지 않는 잠수복에 납 벨트를 차고 물속으로 들어가야 했죠.
이군과 홍군 같은 학생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법령이 직업교육훈련 촉진법과 그 시행령입니다. 그런데 교육부는 집단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이 법을 위반하고 있었습니다.
법 제 4조는 “국가는 직업교육훈련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직업교육훈련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이어 “기본계획에는 ‘직업교육훈련생의 인권보호 및 안전보장’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두 조항 모두 ‘하여야 한다’는 강행 규정입니다. 시행령에서는 “교육부장관 및 고용노동부장관은 직업교육훈련 기본계획을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를 거쳐 5년마다 수립하여야 한다”고 좀 더 명확히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교육부는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기본계획을 언제 마지막으로 만들었는지조차 답변 못 했습니다. ‘에이, 설마 뭔가 있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부와 공동으로 기본계획을 수립했어야 하는 고용노동부 관계자의 말은 이렇습니다. “1997년 법 제정 뒤 (첫 번째) 5개년 중기계획이 수립된 후 지금까지 추가 계획을 수립한 실적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관련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시·도교육청이 모두 참여해야 하는 만큼 교육부가 중심이 돼 5개년 계획 수립을 추진해야 하는 사안이다.” 교육부로서는 ‘얄밉게 우리한테 책임을 미루나’라고 할 수 있겠지만, 교육부가 키를 쥐고 움직여야 했다는 건 틀리지 않아 보입니다.
교육부의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기자가 지금까지 수립된 기본계획을 요구하자 2018년 7월 27일 발표한 ‘평생직업교육훈련 혁신 방안’(이하 혁신 방안)을 내놨습니다. 이 자료가 직업교육훈련의 중장기 마스터플랜으로 법의 기본계획과 마찬가지라는 설명을 붙였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혁신 방안 자료 어디에도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에 따른 5년 단위 기본계획이란 설명이 없습니다. 법령 체계가 비슷한 학교폭력 대응 절차와 비교해볼까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법’은 5년마다 교육부에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합니다. 교육부가 지난해 1월 15일 발표한 ‘제4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 자료를 보면 “법에 따라 5년마다 수립·시행하는 법정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교육부는 5년 주기로 ‘○차 기본계획’이라고 발표하고 이를 밑그림으로 매년 실태조사를 벌이고 세부 실행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무엇보다 혁신 방안에는 ‘직업교육훈련생의 인권보호 및 안전보장’ 내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법은 교육부가 5년 주기 기본계획에서 반드시 학생의 인권보호 및 안전보장을 위한 내용을 다루도록 했습니다. 해당 조항은 콜센터 실습 여고생이 업무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민호군 사고가 터진 뒤 2018년 2월 28일 신설됐습니다. 교육부는 해당 조항이 통과되고 6개월 뒤인 2018년 7월 27일 혁신 방안을 발표합니다.
만약 교육부 주장대로 혁신 방안이 법의 기본계획을 대체하고 있다면 6개월 전에 새롭게 법에 반영된 학생 인권보호 및 안전보장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이 내용이 없다는 건 혁신 계획이 법이나 법에서 의무화한 기본계획을 염두에 두고 만들지 않았다는 얘기가 됩니다. 기본계획이 만들어지지 않는 ‘위법’ 상태에서는 인권보호 및 안전보장 조항은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기본계획을 만들어야 효력을 갖는 조항이니까요. 백번 양보해 혁신 방안을 기본계획으로 간주한다면 2013년에도 방안이 나왔어야 합니다. 2013년 기본계획 존재 여부에 대해 교육부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교육부가 법을 지켰다면 두 학생이 살아 있을까요. 기본계획이 수립되면 대통령 보고가 이뤄진 뒤 교육부와 고용부 등 중앙부처와 광역·기초지자체, 시·도교육청 등이 협업 체계를 가동하게 됩니다. 이들은 실태조사를 벌이고 미흡한 사안을 보완해 매년 세부 실행계획을 세웁니다. 이를 토대로 안전 지침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인권 침해 사례는 없는지 교육 당국은 학교와 학생을, 고용부·지자체는 실습처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기본계획은 이 모든 과정의 출발점입니다.
기본 틀이 없으니 행정은 주먹구구로 흐르기 십상입니다. 학생이 죽어 여론의 공분이 일면 규정을 까다롭게 손봐 현장실습을 사실상 차단해버립니다. 학생 취업길이 막혔다는 비판이 나오면 실습 규정을 풀고, 사고가 터지면 틀어막는 악순환 구조입니다. 그간의 직업계고 대책은 이런 순환 고리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홍군 사고 뒤 직업계고 학생들을 위한 신고센터를 만들고는 “19일 동안 두 건 접수됐다”고 발표하는 전시성 탁상행정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신고센터 만들 때 부당함을 호소한 학생이 취업 등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지 않도록 하는 장치는 마련하지 않았답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홍군 사망 뒤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진심 송구하다”고 사과했습니다. 교육 당국도 책임이 있다면 철저히 그 책임을 묻고 올해 안에 방지 대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음 날에는 홍군 유가족을 만나 눈시울을 붉혔다죠. 그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군, 홍군 같은 아이들을 위한 법을 한 번 정독해보길 권합니다. 교육부가 법만 지킨다면 연말 발표를 위해 부랴부랴 만들고 있다는, 그런 직업계고 대책은 아마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