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천장과 여기저기 칠이 벗겨진 벽면, 한눈에 들어오는 아담한 크기, ‘국제공항’보다는 한적한 지장의 고속버스터미널처럼 보였다.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에 고개부터 갸웃거리게 만드는 이곳은 페루를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 마추픽추로 가는 ‘벨라스코 아스테테 국제공항’이다. 페루 쿠스코주의 쿠스코시에 위치해 있어 편히 쿠스코공항이라 부른다.
지난 18일(현지시간)찾은 쿠스코공항은 코로나19 이전에 연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드나들던 관문 공항이라 불리기엔 소박했다. 쿠스코공항의 수용능력은 연간 170만명이지만, 2018년 기준 방문객은 376만명에 달했다. 수용능력의 2배를 넘은 것이다. 무엇보다 공항 밖 주차장의 담벼락 뒤로 이어진 주택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공항과 주거지역이 너무 가까워 소음공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야간비행은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 4월에 쿠스코주 친체로의 광활한 초지에서 새로운 마추픽추 관문의 역할을 할 ‘친체로 신공항’ 토공사(구조물 시공 전에 땅을 깎거나 다지는 작업)가 시작됐다. 쿠스코 주민들이 40년간 바라온 숙원이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지난 19일 방문한 친체로 신공항 부지에선 트럭, 굴착기 등 중장비 110여대와 기술·노동자 1500여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붉은색의 흙이 다른 높낮이로 다져지고 있었다. 여객터미널과 활주로, 계류장, 주차장 등이 들어설 채비를 하는 것이다.
신공항 부지는 쿠스코공항(해발고도 3200m)보다 600m 높은 곳이라 땅이 훨씬 평평했다. 주택도 쿠스코보다 눈에 띄게 적었다. 덕분에 공항부지를 쿠스코공항의 2배 크기로 조성하고 있다. 친체로 신공항은 마추픽추까지의 거리도 가깝다. 권덕우 현대건설 현장소장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으로 토공사 공정의 45%를 마쳤다. 토공사는 내년 7월 마무리를 목표로 한다.
쿠스코 주정부청사에서 지난 19일 열린 친체로 신공항사업 본공사 착공식은 페루 정부의 기대감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후안 프란시스코 실바 교통통신부 장관은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친체로 신공항사업을 시작하는 축제의 날”이라며 “이 사업은 100만명 이상에게 혜택을 줄 것이고, 직·간접적 일자리를 창출하며, 쿠스코와 페루 남부 지역의 발전 및 주민들 삶을 향상시켜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친체로 신공항사업은 여러 번 초석을 놓았지만 그때마다 문제가 생겨 중단돼왔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 사업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착공식에는 장 폴 베나벤테 쿠스코 주지사, 한국 국토교통부 공항정책관,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 손창완 한국공항공사 사장 등이 참석했다.
친체로 신공항은 오는 2025년 9월 개항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연간 수용능력은 570만명, 탑승교(공항과 비행기 사이를 잇는 다리)는 11기 규모다. 공항 크기로 치면 제주공항 정도다. 여객수용 규모나 공항 크기가 쿠스코공항보다 배 이상 커지는 만큼 기존 국내선만 가능했던 게 친체로 신공항에서는 국제선 직항노선도 운항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친체로 신공항 건설사업은 한국 최초의 ‘공항건설 사업총괄관리(PMO)’ 방식의 수주사업이다. 공항 분야에서 최초의 정부 간 계약(G2G)이라는 의미도 있다. 한국 기업·기술로 지은 스마트 공항이 남미 지역에 진출하는 첫 발이기도 하다. 한국공항공사는 2019년 11월 민관협력 ‘팀 코리아’ 컨소시엄을 구성해 스페인 캐나다 영국 프랑스 터키 등을 제쳤다. 손 사장은 “다울 마뚜떼 메히아 주한 페루대사가 ‘알라스 이 부엔 비엔또(Alas y buen viento, 날개와 순풍)’라고 말해줬다”며 “이 말처럼 한국공항공사는 이번 사업을 계기로 글로벌 해외사업 진출의 저변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쿠스코(페루)=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