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종전선언보다 미·중 갈등 대처 시급하다

입력 2021-11-20 04:0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내년 2월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가능성을 18일(현지시간) 직접 언급했다. 선수단만 파견하고 정부 사절단은 보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올림픽의 다른 기능인 국제 정치·외교 무대를 봉쇄해 단순한 스포츠 행사로 격하시키는 조치다. 중국은 내년 가을 시진핑 주석 3연임 확정을 앞두고 올림픽을 최대한 성대히 치르려 공들이고 있다. 이런 행사의 보이콧은 외교적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더욱이 중국이 민감해하는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를 이유로 꼽아 타협 여지도 축소시켰다. 유럽에선 이미 같은 이유로 보이콧 움직임이 시작된 터라 미국이 강행할 경우 연쇄적 행동이 나올 수도 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긍정적 발언이 오간 지 사흘 만에 양국은 극한 대결의 문턱에 서게 됐다.

이런 상황은 두 나라가 글로벌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 있음을 다시 상기시켜 준다. 승부가 나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이 싸움에 우리도 휘말려 있다. 안보와 경제 모두 양국과 밀접히 얽힌 터라 미묘한 판단과 선택의 순간이 쉼없이 찾아올 것이다. 당장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선언이 직격탄을 맞았다. 올림픽을 계기로 베이징에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이 만나 선언한다는 구상은 보이콧이 강행되면 불가능해진다. 다른 형식을 모색하더라도 북한을 미국과 마주 앉히는 데 필요한 중국의 협력을 끌어내기 어렵다. 미국의 보이콧에 동맹국·우방국들이 동참할 경우 북한과의 종전선언은커녕 우리부터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게 될 수 있다.

미·중 갈등의 여파는 벌써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로 들이닥쳤다. 요소수 사태를 비롯한 중국발 공급난의 기저에는 호주 등 우방국을 반(反)중국 전선에 끌어들인 미국의 견제가 깔려 있다. 미국 정부는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에 반도체 초미세공정 핵심 장비를 설치하려던 계획에도 제동을 걸었다. 중국군 현대화에 활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움직임이 다른 반도체 장비로 확대될 경우 삼성전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미·중 대결이 격화될수록 그 충격파는 더욱 노골적인 모습으로 우리 산업과 통상외교에 광범위하게 미쳐올 테고, 요소수 사태에서와 같은 뒷북대응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은 외교 역량을 종전선언에 올인하듯 쏟아 붓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에게 닥쳐올 파고를 예측하고, 대비하고, 선제적으로 제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