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독도 트집잡아 외교결례… 과거사·오염수 이어 전선 확대

입력 2021-11-19 04:05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일 외교차관 회담을 가진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일 갈등 상황을 반영하듯 잔뜩 굳은 표정의 두 차관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연합뉴스

일본이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을 이유로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 공동기자회견까지 무산시켰다. 한·일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확전이 되는 모습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이번처럼 외교적 결례를 범하는 것을 무릅쓰고 고집을 피운 건 이례적이다. 그동안 과거사 문제로 누적된 양국의 불만이 독도 문제를 계기로 폭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방미 중인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17일(현지시간) “일본 측이 한국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 문제로 공동기자회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3국 협의회 시작 전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협의회 주최국인 미국이 단독 기자회견을 통해 회의 내용을 공개하는 데 한·미·일 3자가 동의해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 홀로 기자회견장에 나와 회의 결과를 설명했다.

3국 협의회가 끝난 뒤 이어진 한·일 외교차관 회담에서 양측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갔다. 외교부에 따르면 양측은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등 현안을 놓고 각자의 입장을 말하는 데 그쳤다.

특히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독도 관련 일본 측 입장을 주장한 데 대해 최 차관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어떠한 주장도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일본이 독도 문제에 반발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8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자 일본은 주한 일본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고, 일본 정치권에선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번엔 급이 훨씬 낮은 경찰청장의 방문이었다. 2009년 10월 당시 강희락 경찰청장이 독도를 찾았을 때도 이렇게까지 외교 이슈로 부상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의 영토”라며 “그런 이유(독도 문제)로 (기자회견에) 불참한 것이 사실이라면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일본이 한·일 양자가 만난 자리도 아닌 다자 외교 현장에서 일본의 가장 중요한 우방이자 이번 회의 호스트인 미국에 결례를 무릅쓴 점 또한 의아함을 자아낸다.

일본의 이런 행동은 단순히 독도 관련 불만이라기보다 이미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태에서 독도 문제가 ‘트리거’(방아쇠)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양국 간에 쌓인 여러 악재들에 독도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관계 개선의 여지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일 협의회 직전에 이뤄진 김 청장의 방문 시점이 적절치 않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외교적 민감성 때문에 정부도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을 당초 비공개로 추진했지만 의도치 않게 일정이 공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일이 일본 내 반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해석도 나온다. 강경파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정치무대 복귀에 시동을 걸면서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이전처럼 관례적으로만 항의했다가는 자국 내 비판 여론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악화된 한·일 관계가 한·미·일 3각 공조에까지 영향을 미칠 경우 미국이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미국이 양자 문제를 중재하겠다고까지 나서지는 않겠지만, 관계 개선에 압력을 가한다면 일본보다는 우리 쪽을 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선 기자,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