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휴대전화 속 별건 범행… 증거능력 없다”

입력 2021-11-19 04:06

수사기관이 피해자 등 제3자에게 임의제출받은 피의자의 휴대전화에서 수사 대상과는 다른 범죄 혐의가 발견됐더라도 디지털 포렌식(증거 분석) 과정에 피의자의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면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18일 준강제추행 및 불법촬영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학교수인 A씨는 2013~2014년 충북 청주의 한 오피스텔에서 만취한 제자 3명의 신체를 만진 뒤 스마트폰으로 몰래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에서는 2014년 12월 피해자가 경찰에 제출한 A씨의 휴대전화 2대 중 1대에서 나온 영상물의 증거능력이 쟁점이 됐다. A씨는 휴대전화 1대에 대해서만 디지털 포렌식을 동의했고 나머지 1대는 A씨가 배제된 상태에서 포렌식이 이뤄졌지만 경찰은 이 휴대전화 분석을 통해 A씨가 2013년에도 비슷한 범행을 저지른 사실을 파악, 범죄사실에 포함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혐의 전부를 유죄로 보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2013년 저지른 범행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포렌식 과정에 A씨의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고, 우연히 발견한 다른 범행에 대해선 별도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피해자 등 제3자가 수사기관에 임의제출한 정보저장매체의 압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디지털 포렌식 과정에 피의자의 참여권 보장이 필수적인지 등을 심리하기 위해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대법관 모두가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도 전원일치 의견으로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피의자가 소유·관리하는 정보저장매체를 피해자 등 제3자가 제출한 경우에도 범죄혐의 사실과 구체적 연관 관계가 있는 전자정보에 한해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수사기관은 피의자에게 참여권 보장과 압수한 전자정보 목록의 교부 등 피의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