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정부와 사회가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 역량을 집중하는 사이 사상 처음으로 연간 10만여명이 약물 남용으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미국인 10만306명이 마약 등 약물을 과다복용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고 CBS뉴스 등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년 같은 기간 28.5% 늘어난 규모로 미국에서 약물 관련 사망자가 1년 동안 6자리 숫자에 도달하기는 처음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WP는 “(1년간) 앨라배마대 축구경기장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매일 275명씩 숨졌다는 얘기”라며 “버지니아주 로어노크 인구(2019년 기준 9만9000여명)와 비슷하다”고 비유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수치는 자동차 사고와 총기 사고로 인한 사망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고 강조했다.
앞서 CDC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연간 기준으로 가장 많은 약 9만3000명이 약물 남용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CDC 사망률 통계 책임자 로버트 앤더슨은 해당 사망자가 2021년에는 1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고 CBS는 전했다.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 펜타닐을 불법 합성한 약물을 과다복용해 사망한 사람이 6만4178명으로 전체의 60.4%를 차지했다. 6만명 초반이던 2016년 전체 약물 관련 사망자를 웃돌았다. 오피오이드 전체로 보면 7만5673명이 남용으로 숨졌다.
CBS는 불법 합성 펜타닐에 대해 “5년 전 가장 많은 과다복용 사망자를 낳은 약물 유형”이라며 “헤로인을 능가하는 매우 치명적인 오피오이드”라고 설명했다.
WP는 “펜타닐은 모르핀보다 몇 배나 강력해 치명적인 과다복용이 더 자주 발생한다”며 “이는 코카인 같은 다른 약물에 점점 더 노출시켜 복용자를 자신도 모르게 죽인다”고 지적했다.
약물 과다복용 사망자 증가는 팬데믹으로 빨라진 공중보건 위기를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에 매몰돼 약물 남용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비롯해 봉쇄조치 장기화로 약물 복용자가 혼자 있게 되면서 도움 받을 기회가 줄었다는 점도 사망자 증가의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팬데믹 이후 약물 과다복용 사례가 급증했다는 사실은 1년 넘도록 지적돼왔다. 지난해 9월 미국의학협회는 코로나19 발병 시작 후 40개 넘는 주에서 오피오이드 관련 사망이 늘었다고 보고했다. 아칸소에서는 약물 과다복용 치료제인 나라칸 사용이 3배 늘고,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는 과다복용 관련 신고전화가 40% 증가했다.
당시 NYT는 “(대유행 초기였던 2020년) 3월에만 펜실베이니아주 요크카운티는 평소보다 3배 많은 약물 과다복용 사망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WP는 “정부는 마약 방지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2022년도 예산으로 110억 달러를 의회에 요청하고 있다”며 “하지만 전례 없는 마약 위기와 100년에 한 번 나오는 바이러스 대유행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시기에 효과는 거의 없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노라 볼코 국립약물남용연구소장은 “사망자 대부분이 25세에서 55세 사이 전성기 연령대에서 발생하기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며 “우리 사회에 중대한 도전”이라고 NYT에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