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최악의 시나리오와 후보들의 숙제

입력 2021-11-19 04:02

대선 경쟁이 본격화됐다. 후보들 모두 “지금보다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관전자들은 불안하다.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돼도 괜찮을까?”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까?”라는 걱정들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해 봤다.

‘이재명정부’ 최악의 시나리오는 본격적인 포퓰리즘 시대의 개막이다. 이 후보의 트레이드마크인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 기본시리즈가 최악의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다. 이 후보가 공약한 국토보유세 신설, 개발이익환수제, 분양가상한제와 같은 부동산 정책들은 혼란스러운 부동산 시장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 후보의 정책들은 논쟁적이다. 보수적인 전문가들이 “비현실적이고 역효과가 나올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이 후보는 “대안도 없이 반대만 한다. 나는 할 수 있고, 실적으로 증명했다”고 반박해 왔다.

포퓰리즘의 특징은 세 가지라고 한다. 첫째, 국민을 둘로 나눈다. 특권층과 일반인, 재벌과 서민 같은 식이다. 둘째, 국민 다수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소수의 특권층을 공격한다. 셋째가 중요한데, 포퓰리스트의 정책은 대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선명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정책, 하지만 다수가 열광하는 정책이다. 대안이 없는 시대에 포퓰리즘 정책은 달콤하다. 이재명정부의 돈 뿌리기와 특권층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면 진영 간 갈등은 심해지고 성장은 정체된다. 게다가 지금 여의도 상황을 보면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거수기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이재명정부 실세 중에서 제2의 유동규가 튀어나올 위험도 있다. 이 후보의 측근 그룹은 주로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시절부터 함께한 인사들인데, 중앙정치에서 제대로 검증된 바 없다. 갑자기 등장한 유동규가 이 후보 대선 가도의 최대 장애물이 된 것처럼 제2의 유동규가 나타나 정권 운영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윤석열정부’ 최악의 시나리오는 제2의 적폐청산 정부, 제2의 이명박정부가 되는 것이다. 윤 후보는 평생 검사로 살아왔다. 좋은 놈과 나쁜 놈의 이분법적 세상에 익숙하다. 합리적인 판단력과 소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화와 타협, 이해관계의 조정이라는 정치의 본령에 익숙하지 않다. 정치 경험이 없는 윤 후보가 지지율 1위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청소하라는 국민의 요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문재인정부에서 나타난 ‘신적폐’를 청소하라는 보수의 요구일 수 있다. 윤 후보가 집권하더라도 국회 다수당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윤석열정부 정책에 반대하면 국정 운영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결국 손쉬운 방법, 윤 후보가 가장 잘하는 게 등장한다. 사정 정국이다. 원전과 태양광, 인사와 선거 개입 등 문재인정부 5년 동안 노출된 일부 문제들이 수사 대상이 된다. ‘반문’을 외쳤지만, 문재인정부 초기 적폐청산이 재현되는 셈이다.

국정 경험이 없는 윤 후보가 국가를 경영하려면 참모들이 중요하다. 지금 윤 후보 주변 사람들을 보면, 새로운 정치와 국가 비전을 보여주는 인사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윤석열정부의 핵심 참모진은 국민의힘 중진들, 문재인정부에서 소외된 관료들, 검찰 출신 전관, 일부 보수 인사들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은 아직 개혁되지 않았고, 관료들의 한계는 뚜렷하고, 전관들의 역할은 뻔하다. 이 후보의 참모들은 잘 알려지지 않아서 문제라면 윤 후보의 참모들은 너무 뻔해서 문제다. 윤 후보의 처가 리스크도 계속 문제가 될 수 있다. 미·일 경도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북한 리스크가 터질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어날 가능성보다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부정적인 면만 강조한 것이다. 다만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유달리 높다는 것은 이런 시나리오를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는 의미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견제와 균형의 구도를 튼튼히 만드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이뤄진다. 국회와 행정부, 검찰과 법원, 언론, 재계와 시민사회가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사회다. 자신이 당선되면 최악의 시나리오 대신 견제와 균형을 기반으로 한 민주적 국가 운영이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 이것이 내년 3월 9일 투표일 전까지 남은 후보들의 숙제다.

남도영 논설위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