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청춘이여, 삶의 주인공이 되길

입력 2021-11-19 04:03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늘 그렇듯 관공서와 기업은 출근 시간을 늦췄고, 시험장 주변을 지나는 열차는 서행하며 경적도 울리지 않았다. 해마다 11월 둘째주 목요일 풍경이다.

시험 다음 날이면 으레 시험을 망쳤거나 원하는 대학에 갈 만한 점수를 받지 못한 학생, 또는 진학하지 않을 학생을 위로하는 말이나 글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이재철 목사의 설교집 ‘사도행전 속으로’ 4권에 실린 ‘춘화현상’이다. 이 책은 사도행전 8, 9장에 대한 설교다. 스데반의 순교로 촉발된 대박해와 사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겪어야 했던 고난과 좌절을 다룬다.

춘화현상은 이렇다. “호주 시드니에 사는 교민이 고국을 다녀가는 길에 개나리 가지를 꺾어다가 자기 집 마당에 심었다. 이듬해 봄이 되었다. 맑은 공기와 좋은 햇볕 덕에 가지와 잎은 무성해졌다. 하지만 꽃은 피지 않았다. 몇 해가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교민은 그제야 알았다. 겨울이 없는 호주에서 개나리꽃은 아예 피지 않는다는 것을. 춘화현상은 저온을 거쳐야만 꽃이 피는 것을 말한다. 튤립 히아신스 백합 라일락 철쭉 진달래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봄보리와 가을보리를 비교한다.) 봄에 파종하는 보리에 비해 가을에 파종해 겨울을 나는 가을보리의 수확량이 훨씬 많고, 맛도 좋다. 인생이 춘화현상과 같아서 혹한을 거친 뒤에 꽃이 피고, 인생의 열매는 가을보리와 같아서 겨울을 거치면서 풍성해지고 견실해진다. 고난을 많이 헤쳐 온 사람이 강인하고 깊이도 깊다.” 굴곡 없는 인생은 없다. 수험생들에게 할 수 있는 위로로 충분하다. 그러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2022학년도 수능에는 50만9821명이 지원했다. 작년보다 늘었다. 전체 대학 모집인원은 34만6553명으로 2021학년도 34만7447명보다 894명 감소했다. 수도권 대학 모집인원은 12만9562명, 서울 소재 대학 정원은 3만5000명 수준이다. 경쟁률이 높아졌다.

창의융합형 인재를 키우겠다며 확대해온 수시 전형은 정보의 편차, 기회의 불균형 등으로 왜곡됐다. 학생부, 자기소개서를 잘 쓰기 위한 여러 ‘찬스’ 사용은 불문가지다. 교육부가 대입 공정성 확보를 위해 2023년까지 정시 전형 비율을 높이겠다고 하면서 서울 소재 주요 대학은 정시 전형 선발 비율을 늘렸다. 수도권 재수생과 특수목적고 학생이 수혜자라는 분석이 나왔다. 사교육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대학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방황해야 한다. 사회는 나를 온전히 평가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학생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대입 전형을 거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경험한다. 그곳에서 겪어야만 하는 고통과 고난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모든 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여기게 된다.

친한 이들이 모이면 하는 얘기가 있다.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은 부담스럽고 재수 없다고.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잘난 사람보다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 똑똑한 사람보다 친절하고 편안한 사람, 마음을 알아주고, 잘 들어주는, 마음이 고운 사람, 뭔가 숨기려는 사람보다 진실한 사람이 좋다고. 자라나는 세대를 보는 시각, 교육의 목적을 바꿔야 한다. 좋은 대학 입학이나 훌륭한 직업을 갖도록 하는 과정이 아니라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닦아주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제 세상을 향해 나오는 친구들에게, 지금 한창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너 이제 어떻게 할래’ ‘너는 무엇이 될래’라고 묻기보다 ‘어떻게 살래’를 물어보자. 그 답에 동의하고 격려해 주자. 그게 최고의 위로이지 싶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