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가난한 과부의 감사

입력 2021-11-19 17:52

지금 우리는 감사의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곧 한 해를 마무리하며 베풀어주신 은혜를 돌아보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계시나요.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한 과부의 모습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서기관들은 누구일까요. 그들은 전문적인 말씀 교육을 받고 갖게 된 지식으로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던 이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평가는 세상과 달라 보입니다. 그들은 특별한 옷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았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가장 좋은 자리에 앉기를 즐겼습니다. 그 자리는 어떠한 곳입니까. 그날 가장 중요하거나 대접을 받아야 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도구는 아니었을까요. 말씀을 살펴보면 그들은 연약한 자들을 돌보기보다 과부의 것을 빼앗고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길게 기도하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그 지식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기보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원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어떤 모습입니까.

41절에서 예수님은 요란한 가운데에서도 한 여인에게 집중하십니다. 그리고 그녀가 드리는 두 렙돈의 예물로 인해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43절)

과연 얼마나 큰 금액이기에 예수님이 기뻐하셨을까요. 두 렙돈은 그 시대에 노동자 하루 품삯(데나리온)의 64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결코 큰 금액이 아닙니다. 적은 돈이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기뻐하셨을까요.

얼마 전 초등학생 아들로부터 “아빠 맛있는 커피 사드세요”라며 만원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주 기뻤습니다. 제가 만원이 생겼기 때문에 기뻤을까요. 아닙니다. 아들이 기쁨으로 준 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날 아들은 더 큰 것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드린 돈의 액수가 아닌 그녀의 마음에 집중하셨습니다. 그는 힘든 형편 가운데서도 하나님 사랑에 감사하며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전부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물은 표면적 가치가 아니라 그것을 드린 이들의 마음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같이 남의 시선을 의식한 감사는 그 가치를 잃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은 말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적게 드리건 많게 드리건 그 마음의 중심에 감사함이 있는지를 보십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과 그 감사함을 기뻐 받으십니다.

풍요로운 은혜에 감사하는 이 시간,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시겠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오직 그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상규 행복한교회 목사

◇행복한 교회는 기독교한국루터회에 소속된 교회로 오직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따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