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000명 울린 대부업체 정보, 1년 늑장 공개한 금감원

입력 2021-11-18 04:01

금융감독원이 2000여명에게 270억원대 피해를 입힌 P2P(peer to peer·개인 간) 대부업체 정보 공개를 ‘영업상 비밀 침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가 1년여 만에 공개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이 영업상 비밀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뒤에야 늑장 공개한 것이다. 금융당국의 ‘나몰라라’식 정보 비공개 행태가 막대한 돈을 날린 금융사기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P2P 투자업체인 넥스리치펀딩(넥펀)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입은 349명은 지난해 8월 14일 넥펀의 대출 창구였던 ‘넥스리치대부’와 ‘넥스리치자산관리대부’에 대한 정보공개를 금감원에 청구했다. 이들은 인터넷으로 투자자들을 모집해 끌어모은 돈을 기존 투자자들의 원리금으로 돌려주는 데 쓰는 이른바 ‘돌려막기’ 수법에 당한 피해자들이었다.

정보공개 청구 대상은 두 회사의 자기자본 증명서류와 보증금예탁 또는 공제가입 서류, 주주 명부 등이었다. 투자금을 돌려받기 위해선 최소한의 업체 정보가 필요했던 것이다. 넥펀 대표 이모(47)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10년에 추징금 270억여원을 지난 1월 선고받고 항소했으나 기각당해 상고한 상태다.

그러나 금감원은 지난해 8월 28일 정보공개 청구 신청에 대해 거부 결정을 내렸다. ‘정보공개법에 따라 특정 법인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에 해당돼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공개 거부된 정보는 지난해 8월 27일부터 시행 중인 온라인 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개 대상 정보로 규정돼 있었는데도 비공개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금감원은 넥펀 사건이 터진 지난해 7월 피해자들 민원에도 “(넥펀은) 관련 법상 제도권 금융회사가 아니므로 금감원의 감독 및 검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답변만 내놨었다.

이에 피해자들은 법원에 정보공개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피해자들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이상훈)는 지난 8월 “정보공개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정보 공개로 인해 회사의 정당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면서 “사기 범행에 관여된 법인에 관한 사건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위법·부당한 사업 활동으로부터 국민의 재산 또는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결국 정보 공개는 지난 9월 판결 확정 절차를 거쳐 지난달 중순에야 이뤄졌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소극적이었던 금감원 탓에 최소한의 사기 업체 관련 정보도 확보하지 못한 피해자들은 현재까지 떼인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한 피해자는 17일 “금융당국은 관련 법이 없다는 핑계로 새로운 사기 수법을 막으려는 노력은커녕 관련 법 제정 이후에도 하소연할 데 없는 피해자들에게 싸늘한 반응만 보였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