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화상 정상회담을 한 지 하루 만에 미·중 관계가 다시 삐걱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회담 직후 공개적으로 ‘미국에 맞서지 말라’는 취지의 언급을 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외교적 보이콧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자 중국 매체들은 “잠깐의 긍정적 분위기가 금세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를 방문해 전날 서명한 1조2000억 달러(1400조원) 규모의 인프라 예산법안 홍보 연설을 하던 중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부통령 시절 만난 시 주석에게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는 없다”고 말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미국에 맞서 돈을 거는 건 좋은 내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 행사에서 자국민을 향해 미국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부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중 정상회담을 전후해 같은 메시지를 연달아 낸 건 결국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에 대중 압박 동참을 촉구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재건을 위한 청사진으로 표현한 인프라법은 사회 기반 시설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의 경쟁 때문에라도 이 법이 꼭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정상회담 직후 바이든 행정부가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외교적으로 보이콧할 가능성이 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이 중국의 인권 문제를 압박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과 정부 인사 모두 올림픽에 참석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베이징 올림픽은 지난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연례 전체회의에서 3연임을 기정사실화한 시 주석이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할 초대형 행사다. WP는 바이든 행정부가 올림픽 전면 불참 대신 외교적 보이콧이라는 절충안을 택할 수 있다고 분석했지만 시 주석 입장에선 시작하기도 전에 김을 빼는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중국 매체들은 이번 정상회담이 양국 긴장 완화를 위한 긍정적 신호라고 평가하면서도 후속 조치 이행을 위한 미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간 전례를 보면 미국이 정상회담이나 통화 직후 대립적인 메시지를 내놓는 경우가 많았고, 국내 반대 세력 때문에 정상간 합의 이행에 번번이 제동이 걸렸다는 것이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바이든 행정부는 정상회담을 제안한 본래 의도를 분명히 기억하고 긴장 완화를 위한 일관된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상 정상회담이 열리면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 게 외교 관례지만 중국 매체는 이번 회담이 미국의 요청으로 열렸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이 매체는 바이든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한다’고 한 데 대해서도 “대만 문제에 관한 미국의 태도 변화로 봐서는 안 된다. 모호한 용어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사적 긴장도 여전하다.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정상회담 당일 중국 군용기 8대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해 무력 시위를 벌였다. 같은 날 미국 해군과 일본 해상보안청은 남중국해에서 미·일 동맹 강화를 목표로 연합 훈련을 실시했다고 일본 방위성이 밝혔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