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세상을 위한 좋은 저널리즘… 손석희가 남긴 이야기

입력 2021-11-18 19:54
지난 10여년간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꼽혀온 손석희 전 JTBC 총괄사장은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순회특파원 자격으로 곧 출국한다. 해외로 떠나기 전 출간한 '장면들'에서 그는 평생 다듬어온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들을 밝혀 놓았다. 창비 제공

손석희 전 JTBC 총괄사장이 ‘장면들’(창비)을 출간했다. ‘풀종다리의 노래’ 이후 28년 만에 내놓는 그의 두 번째 책이자 해외로 떠나기 전 남기는 ‘손석희 저널리즘’에 대한 보고서다. 2013년 JTBC로 이적한 후 그가 주도한 세월호, 태블릿PC, 미투 등 대한민국을 뒤흔든 보도들에 대한 회고담과 지금까지 정립해온 저널리즘 철학을 들려준다.


손 전 사장은 책에서 30년간 근무했던 MBC를 떠나 58세에 신생 방송사로 이적한 과정을 밝혔다. 정권의 지시를 받은 경영진이 ‘100분토론’ 진행자에서 물러나게 한 후 ‘시선집중’ 프로그램까지 간섭하자 떠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그의 JTBC 이적을 두고 논란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내가 실천할 저널리즘만 지키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과 삼성 문제를 포함한 보도의 전권을 약속 받고 자리를 옮겼다.

JTBC에서 손 전 사장은 보도국 수장이자 저녁 메인 뉴스 ‘뉴스룸’의 앵커로 200일 넘게 이어진 세월호 참사 연속 보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스모킹건이 된 최순실 태블릿PC 입수 보도,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 인터뷰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퇴로 이어진 김지은씨 인터뷰 등을 이끌었다.

그는 자신이 실행해온 저널리즘을 ‘어젠다 키핑’이란 키워드로 설명했다. 언론의 전통적인 기능으로 여겨져온 ‘어젠다 세팅(의제 설정)’을 넘어 중요한 의제를 집중적이고 연속적으로 보도하면서 문제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는 게 어젠다 키핑이다.

그는 태블릿PC 입수 과정도 상세히 밝히며 조작설을 반박했다. 건물 관리인이 JTBC 기자라는 걸 확인하고 최순실 사무실의 잠긴 문을 열어줬다며 “그것은 박근혜정부 내내 대부분의 언론들이 자의건 타의건 정부 비판에 인색했을 때, 힘들게 ‘No’라고 했던 지난했던 과정의 결과였다. 특히 세월호참사에 대한 보도를 미련하도록 지켜낸 결과였다”고 평가했다.

‘조국 보도’에 대해서는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조국 보도 과정에서 쏟아진 ‘기레기’ 비판에 부당함을 표시하면서도 동시에 “언론이 얼마만큼 검찰개혁이라는 본질을 드러내고 그 당위성과 역사성까지 짚어냈는지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다”고 회고했다.

손 전 사장은 이 책에서 ‘경비견으로서의 언론’ 가설을 몇 차례 언급한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watchdog)과 권력에 아부하는 애완견(lapdog)으로 구분됐는데 경비견(guard dog)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비견 언론은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된 언론이다. 그래서 체제 내의 정치권력에 끊임없이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알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체제 유지를 위해 그 정치권력을 공격하기도 한다. 손석희는 보수 언론들이 박근혜 탄핵에 가세한 일을 경비견 가설로 설명하면서 한국의 언론을 경비견으로 보는 게 더 적합하지 않겠느냐는 관점을 내비친다.

지난 10여년간 손 전 사장은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꼽혀왔다. 이 책은 손석희의 힘이, 저널리즘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과 좋은 저널리즘을 향한 집요한 추구에서 나온다는 걸 알게 한다. “저널리즘을 위해 운동을 할 순 있지만, 운동을 위해 저널리즘을 하진 않는다”는 그의 말은 손석희 저널리즘의 핵심을 요약해 보여준다.

65세의 손 전 사장은 이제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순회특파원이라는 단출한 신분으로 외국으로 떠난다. 그가 다시 앵커로 복귀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는 “글쎄…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