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증가세 억제 방침에 맞춰 은행들이 역대급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대출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며 서민들의 이자 부담은 치솟고 있지만 정작 이를 감독해야할 금융당국은 시장원리를 내세우며 뒷짐만 지고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 초기 적극적으로 개입에 나섰던 것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금융당국의 이중플레이에 “그때는 (적극 개입이) 맞고 지금은 틀리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정부 1년차였던 2017년 3분기 상황은 현재와 비슷하다. 글로벌 통화정책 정상화에 따라 대출금리가 오르고 예대금리차가 벌어졌다. 금융당국은 은행 관계자를 소집해 문제를 지적하고 현장지도·점검에 나섰다. 같은 해 10월 말 김용범 당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시중은행 간담회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가산금리를 인상하면 큰 사회적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며 “은행의 대출금리 산정체계를 지속해서 점검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듬해 6월에는 금융감독원이 대출금리 산정체계 적정성 검사 결과를 발표하며 “대출금리 산정체계는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될 필요가 있다. 금리 상승기에 취약 가계가 불공정하게 차별받는 사례가 포착되면 즉시 현장점검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했던 2017년 당시 가계대출 예대금리차는 1.90%였다. 가산금리(주담대 분할 기준)도 연 1.50%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은행들의 마진 폭이 더 커진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시중은행 예대금리차는 2.14%를 기록했다. 전국은행연합회 비교공시를 보면 지난 9월 기준 5대 시중은행의 평균 가산금리는 연 2.83%였다.
나날이 늘어가는 이자 부담에 대출 수요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지만 정작 은행의 폭리를 감독해야 할 금융당국은 시장원리를 내세우며 뒷짐만 지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16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대출금리 상승이 지나치게 빠르다”는 지적에 “가계부채 관리 강화 과정에서 우대금리가 축소되는 등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며 “(시장의 대출) 금리 결정 등에 대해서 정부가 직접 개입하긴 어렵다”고 답변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9일 시중은행장과의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제1·2금융권 금리가 역전된 것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금리라는 것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이고 이에 대해 존중을 해야 한다”며 “감독 차원에서 신중하게 모니터링하는 중”이라고 했다. 금융당국의 두 수장 모두가 대출금리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3년 만에 금융당국이 같은 사안에 대해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은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가계대출을 옥죄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이 대출금리를 올리면 그만큼 대출 수요가 줄어들고,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강조하는 시장 자율성이 유독 ‘대출시장’에만 적용하는 것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적격 비용’ 논리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시장가격은 금융당국이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는 왜 원가를 따져서 반강제적으로 조정하느냐”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