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수처, 무능에 정치적 중립성까지 의심받아서야

입력 2021-11-18 04:03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왼쪽)이 지난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휩싸였다. ‘고발사주’ 의혹 사건 주임검사인 여운국 차장이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 박성준 의원과 접촉했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여 차장은 공수처에서 법 개정 및 예산 관련 행정 업무를 총괄하고 있어 여야 의원들과의 만남은 불가피하고, 최근 권성동·전주혜 국민의힘 의원들과도 통화했다는 점을 들어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충분하지 않다. 박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수처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 사건의 연관성을 강하게 주장했고, 김진욱 공수처장에게 수사 중인 내용을 소상히 공개하라고 요구했던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당초 국회의연락 업무를 맡은 여 차장을 정치적으로 극도로 민감한 사건의 주임검사로 지명한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 동일인이 의원들에게 예산 확보와 법 개정을 요청하면서 정치적으로 극도로 민감한 사안을 직접 수사하는, 상반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네모난 동그라미 그리기로 보일 수밖에 없다. 식사 약속을 했다가 시간이 안 맞아 취소했다는 박 의원의 말과 통화만 했지 만나기로 하지는 않았다는 여 차장의 해명이 다른 점도 개운치 않다.

공수처는 검찰의 부당한 정치 개입과 권한 남용에 지친 국민들의 지지 속에 출범한 문재인정부 검찰 개혁의 핵심이다. 그러나 출범 300일이 넘도록 좀처럼 존재 이유를 보여주지 못했다. 어렵게 고른 1호 사건은 기소권이 없어 검찰에 기소를 요청했고, 인권 침해 및 절차 논란을 빚은 첫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검찰과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는 물론이고 권력 기관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단호하게 척결해줄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는 점점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중에 공수처가 ‘윤수처’라는 비난을 들으며 정치적 중립성까지 의심받으니 답답할 뿐이다. 공수처는 “수사가 공정할 뿐 아니라 공정해 보이도록 노력하겠다”는 김 처장의 국회에서의 발언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검찰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의 부당한 흠집내기라는 주장만 해서는 결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