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진이 즐거워야 방송도 재밌다… 게임이 늘 고민”

입력 2021-11-20 04:05
SBS 인기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을 이끄는 최보필 PD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한결 기자

SBS의 장수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이 지난 7월 11주년을 맞았다. ‘런닝맨’은 국내뿐만 아니라 중화권과 동남아 등 해외에서도 팬덤이 강한 글로벌 예능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해외 현지를 찾아 팬미팅을 할 정도로 팬층이 두껍다. 현재 유재석 김종국 하하 송지효 전소민 양세찬 지석진 등 7명의 멤버가 매주 게스트와 다양한 게임을 하면서 웃음을 선사한다.

지난해 3월부터 메인 PD를 맡아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이는 최보필 PD다. 코로나19로 촬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멤버들과 끈끈한 ‘케미스트리’를 보여주며 프로그램의 재미를 한층 끌어올렸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인근의 한 카페에서 최 PD를 만났다.

최 PD는 ‘런닝맨’의 일곱 번째 사령탑이다. 메인 PD로 활약한 기간은 2년이 채 안 되지만 그와 ‘런닝맨’이 인연을 맺은 지는 5년이 됐다. 2014년 SBS 입사 후 조연출로 일한 기간의 대부분을 ‘런닝맨’에서 보냈다. 덕분에 메인 PD가 됐을 때도 압박감이 크지 않았지만, 이전보다 직접 결정할 게 많아진 건 부담이었다. 특히 방송의 핵심 콘텐츠인 게임을 구상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최 PD는 “초기에는 내가 구상한 게임이 재미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졌다”며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게임도 막상 해보니 재미가 없는 게 많았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어떤 게임을 해야 재밌는지 ‘재미 포인트’를 찾았다.

11년간 방송하며 다양한 시도를 했으니 새로운 게임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최 PD는 “오래된 프로그램이라 회의에서 ‘이런 게임 어때’하고 누군가 제안하면 늘 ‘몇 년 전에 한 거야’라는 답변이 돌아와 작가들의 고민이 크다”고 전했다. 부족했던 부분은 멤버들의 도움으로 이겨냈다. 그는 “게임을 하면 멤버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줘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며 “멤버들이 초기에 많이 도와줘서 그나마 방송이 가능할 정도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9명의 작가가 매주 새로운 게임을 짜기 위해 여러 차례 회의하면서 머리를 맞댄다. 일주일 만에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다. 100을 구상해도 30은 버릴 때가 많다. 게임 세트장도 더 신경 써서 준비하고 싶지만 시간이 모자라 못할 때가 많다.

게임을 구상할 때 최 PD가 재미만큼 신경 쓰는 부분은 안전이다. 촬영 현장에는 게임을 사전에 시뮬레이션하는 진행팀이 있다. 이들이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미리 게임을 해본 뒤 어떤 부분이 위험한지 의견을 준다. 최 PD는 “‘웬만하면 이런 일은 안 생길 것 같은데’ 해도 사고는 생길 수 있다”며 “게임을 하면서 다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우고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런닝맨’은 어려움이 많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촬영장소가 제한됐다. 확산세가 거세던 작년 초와 연말에는 촬영 공간을 빌리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올해는 방송 스태프 중에 확진자가 나와 녹화를 취소하고 장소를 급히 새로 구하는 일도 있었다.

촬영장소가 제한되자 소재의 폭도 줄었다. 과거 ‘런닝맨’은 해외를 가거나 몇 주에 걸친 장기 시리즈도 촬영했다. 최 PD는 “장기 프로젝트를 할 때는 화제성도 있고 시리즈 내내 시청률이 잘 나왔다”며 “지금은 코로나19로 해외 촬영, 대규모 팬미팅을 할 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해외촬영을 재개할 생각이다.

이달부터 위드 코로나가 시작됐지만, 야외 촬영을 늘리는 등 일상 회복에는 조심스럽다. ‘런닝맨’을 촬영하려면 보통 100여명이 필요하다. 최소화해도 제작진과 출연진 20~30명은 움직인다. 만에 하나 촬영 도중 감염이 발생하면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제작도 전면 중단된다.

최 PD는 “다음 달에도 예전처럼 촬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사회적인 분위기보다 한 박자 늦게 가려 한다”고 전했다.

멤버들에게 잇따른 악재도 고민이다. 지난해 전소민과 양세찬이 건강상의 문제로 일부 촬영에 불참했다. 11년을 함께해 온 이광수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지난 6월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최 PD는 “오랫동안 방송하면서 멤버들이 아픈 일이 드물었는데 하필 내가 오고 나서 아픈 일이 자주 발생했다. ‘내가 운이 별로 없구나’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이광수를 떠나보내던 559회차 방송에서 최 PD는 눈물을 훔쳤다. 그는 “방송에도 나왔지만 사실 촬영 중에 날파리가 눈에 들어가 눈물이 나온 거였다”면서도 “촬영 후반부엔 정말로 눈물이 났다”고 했다.

‘런닝맨’ 멤버 7명의 모습(왼쪽 위)과 최보필 PD가 방송에 직접 등장하는 장면들. 제작진도 직접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에선 PD와 출연진 간 호흡이 중요하다. SBS 제공

인터뷰 내내 최 PD는 출연진도, 시청자도 즐거운 ‘런닝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멤버들이 ‘촬영장에 오는 게 재밌다’고 얘기해줄 때 그간의 스트레스를 잊을 만큼 뿌듯하다”고 했다. 최 PD도 촬영장에 갈 때는 부담감으로 긴장하지만 녹화가 시작되면 웃기 바쁠 정도로 즐겁다.

그는 “함께하는 멤버들이 재밌어야 방송도 재밌다고 생각한다”며 “멤버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건 억지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프로그램은 (의도했던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청률과 수익률까지 목표치를 달성하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최근 가장 만족스럽게 촬영한 방송으로는 21일 방영분을 꼽았다. 그는 “이번 주엔 게스트가 없다. 오랜만에 ‘런닝맨’ 멤버들이 한 팀이 돼 제작진과 대결하는 구도”라며 “멤버와 제작진 모두 정말 즐기면서 촬영했다. 두 팀 중 누가 벌칙을 받는지 확인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프로그램과 멤버들에 대한 애정 덕분에 최 PD에 대한 시청자 평가도 좋다. 게임 벌칙의 가학성이 줄고 멤버와 PD 간 호흡이 돋보인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최 PD는 “초기에는 딕션(발음)이 좋지 않다는 평을 받았다”며 멋쩍게 웃었다. ‘런닝맨’은 PD가 출연진에게 게임의 규칙을 설명해야 해 유독 PD의 목소리가 많이 방송된다. 그가 게임을 설명할 때 출연진이 종종 “못 알아듣겠다”고 핀잔 주는 장면도 재미를 준다. 최 PD는 “연습해서 나아졌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치아 교정을 시작해 초반보다 오히려 (발음이) 안 좋아졌다. 더욱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일부 팬은 예전처럼 ‘이름표 뜯기’ 레이스를 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한다. 멤버들이 나이가 들면서 체력적 한계에 부딪힌 것 같다는 추측도 나온다. 최 PD는 “연예인은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체력적인 문제 때문에 이름표 레이스를 못하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레이스를 한다고 반드시 반응이 좋거나 시청률이 잘 나오는 건 아니었다. 같은 멤버끼리 레이스를 오래 하다 보니 흐름이 예측 가능하다는 한계도 있었다”며 “게임의 새로운 방향성을 찾기 위해 레이스를 자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에 ‘런닝맨’이 이광수의 빈 자리에 추가 멤버를 뽑을지도 시청자의 관심사다. 최 PD는 이에 대해선 명확한 계획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최 PD는 장기적으로 예능 PD로서 해보고 싶은 콘텐츠로 ‘여행’을 꼽았다. 그는 “‘런닝맨’을 할 때도 여행가는 특집이 즐거웠다”며 “여행 가는 예능을 꼭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