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의 장수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이 지난 7월 11주년을 맞았다. ‘런닝맨’은 국내뿐만 아니라 중화권과 동남아 등 해외에서도 팬덤이 강한 글로벌 예능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해외 현지를 찾아 팬미팅을 할 정도로 팬층이 두껍다. 현재 유재석 김종국 하하 송지효 전소민 양세찬 지석진 등 7명의 멤버가 매주 게스트와 다양한 게임을 하면서 웃음을 선사한다.
지난해 3월부터 메인 PD를 맡아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이는 최보필 PD다. 코로나19로 촬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멤버들과 끈끈한 ‘케미스트리’를 보여주며 프로그램의 재미를 한층 끌어올렸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인근의 한 카페에서 최 PD를 만났다.
최 PD는 ‘런닝맨’의 일곱 번째 사령탑이다. 메인 PD로 활약한 기간은 2년이 채 안 되지만 그와 ‘런닝맨’이 인연을 맺은 지는 5년이 됐다. 2014년 SBS 입사 후 조연출로 일한 기간의 대부분을 ‘런닝맨’에서 보냈다. 덕분에 메인 PD가 됐을 때도 압박감이 크지 않았지만, 이전보다 직접 결정할 게 많아진 건 부담이었다. 특히 방송의 핵심 콘텐츠인 게임을 구상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최 PD는 “초기에는 내가 구상한 게임이 재미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졌다”며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게임도 막상 해보니 재미가 없는 게 많았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어떤 게임을 해야 재밌는지 ‘재미 포인트’를 찾았다.
11년간 방송하며 다양한 시도를 했으니 새로운 게임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최 PD는 “오래된 프로그램이라 회의에서 ‘이런 게임 어때’하고 누군가 제안하면 늘 ‘몇 년 전에 한 거야’라는 답변이 돌아와 작가들의 고민이 크다”고 전했다. 부족했던 부분은 멤버들의 도움으로 이겨냈다. 그는 “게임을 하면 멤버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줘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며 “멤버들이 초기에 많이 도와줘서 그나마 방송이 가능할 정도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9명의 작가가 매주 새로운 게임을 짜기 위해 여러 차례 회의하면서 머리를 맞댄다. 일주일 만에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다. 100을 구상해도 30은 버릴 때가 많다. 게임 세트장도 더 신경 써서 준비하고 싶지만 시간이 모자라 못할 때가 많다.
게임을 구상할 때 최 PD가 재미만큼 신경 쓰는 부분은 안전이다. 촬영 현장에는 게임을 사전에 시뮬레이션하는 진행팀이 있다. 이들이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미리 게임을 해본 뒤 어떤 부분이 위험한지 의견을 준다. 최 PD는 “‘웬만하면 이런 일은 안 생길 것 같은데’ 해도 사고는 생길 수 있다”며 “게임을 하면서 다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우고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런닝맨’은 어려움이 많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촬영장소가 제한됐다. 확산세가 거세던 작년 초와 연말에는 촬영 공간을 빌리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올해는 방송 스태프 중에 확진자가 나와 녹화를 취소하고 장소를 급히 새로 구하는 일도 있었다.
촬영장소가 제한되자 소재의 폭도 줄었다. 과거 ‘런닝맨’은 해외를 가거나 몇 주에 걸친 장기 시리즈도 촬영했다. 최 PD는 “장기 프로젝트를 할 때는 화제성도 있고 시리즈 내내 시청률이 잘 나왔다”며 “지금은 코로나19로 해외 촬영, 대규모 팬미팅을 할 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해외촬영을 재개할 생각이다.
이달부터 위드 코로나가 시작됐지만, 야외 촬영을 늘리는 등 일상 회복에는 조심스럽다. ‘런닝맨’을 촬영하려면 보통 100여명이 필요하다. 최소화해도 제작진과 출연진 20~30명은 움직인다. 만에 하나 촬영 도중 감염이 발생하면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제작도 전면 중단된다.
최 PD는 “다음 달에도 예전처럼 촬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사회적인 분위기보다 한 박자 늦게 가려 한다”고 전했다.
멤버들에게 잇따른 악재도 고민이다. 지난해 전소민과 양세찬이 건강상의 문제로 일부 촬영에 불참했다. 11년을 함께해 온 이광수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지난 6월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최 PD는 “오랫동안 방송하면서 멤버들이 아픈 일이 드물었는데 하필 내가 오고 나서 아픈 일이 자주 발생했다. ‘내가 운이 별로 없구나’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이광수를 떠나보내던 559회차 방송에서 최 PD는 눈물을 훔쳤다. 그는 “방송에도 나왔지만 사실 촬영 중에 날파리가 눈에 들어가 눈물이 나온 거였다”면서도 “촬영 후반부엔 정말로 눈물이 났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최 PD는 출연진도, 시청자도 즐거운 ‘런닝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멤버들이 ‘촬영장에 오는 게 재밌다’고 얘기해줄 때 그간의 스트레스를 잊을 만큼 뿌듯하다”고 했다. 최 PD도 촬영장에 갈 때는 부담감으로 긴장하지만 녹화가 시작되면 웃기 바쁠 정도로 즐겁다.
그는 “함께하는 멤버들이 재밌어야 방송도 재밌다고 생각한다”며 “멤버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건 억지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프로그램은 (의도했던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청률과 수익률까지 목표치를 달성하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최근 가장 만족스럽게 촬영한 방송으로는 21일 방영분을 꼽았다. 그는 “이번 주엔 게스트가 없다. 오랜만에 ‘런닝맨’ 멤버들이 한 팀이 돼 제작진과 대결하는 구도”라며 “멤버와 제작진 모두 정말 즐기면서 촬영했다. 두 팀 중 누가 벌칙을 받는지 확인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프로그램과 멤버들에 대한 애정 덕분에 최 PD에 대한 시청자 평가도 좋다. 게임 벌칙의 가학성이 줄고 멤버와 PD 간 호흡이 돋보인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최 PD는 “초기에는 딕션(발음)이 좋지 않다는 평을 받았다”며 멋쩍게 웃었다. ‘런닝맨’은 PD가 출연진에게 게임의 규칙을 설명해야 해 유독 PD의 목소리가 많이 방송된다. 그가 게임을 설명할 때 출연진이 종종 “못 알아듣겠다”고 핀잔 주는 장면도 재미를 준다. 최 PD는 “연습해서 나아졌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치아 교정을 시작해 초반보다 오히려 (발음이) 안 좋아졌다. 더욱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일부 팬은 예전처럼 ‘이름표 뜯기’ 레이스를 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한다. 멤버들이 나이가 들면서 체력적 한계에 부딪힌 것 같다는 추측도 나온다. 최 PD는 “연예인은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체력적인 문제 때문에 이름표 레이스를 못하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레이스를 한다고 반드시 반응이 좋거나 시청률이 잘 나오는 건 아니었다. 같은 멤버끼리 레이스를 오래 하다 보니 흐름이 예측 가능하다는 한계도 있었다”며 “게임의 새로운 방향성을 찾기 위해 레이스를 자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에 ‘런닝맨’이 이광수의 빈 자리에 추가 멤버를 뽑을지도 시청자의 관심사다. 최 PD는 이에 대해선 명확한 계획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최 PD는 장기적으로 예능 PD로서 해보고 싶은 콘텐츠로 ‘여행’을 꼽았다. 그는 “‘런닝맨’을 할 때도 여행가는 특집이 즐거웠다”며 “여행 가는 예능을 꼭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