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우려” “내정 간섭” 평행선에도… 갈등 조정 필요 공감대

입력 2021-11-17 04:03
미·중은 16일 열린 화상 정상회담에서 체제가 다른 때문인지 회담장 배치도 달랐다. 중국은 화면 맞은편에 대형 탁자를 두고 가운데 시진핑 국가주석이 앉았고 양쪽으로 류허 국무원 부총리, 딩쉐샹 중앙판공청 주임 등이 배석했다. 미국은 캐주얼하게 테이블에 조 바이든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재닛 옐런 재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둘러앉았다(아래 사진). AP·신화연합뉴스

미·중 화상 정상회담은 예상대로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양국은 회담 뒤 보도자료 형식의 설명문만 각자 발표했다. 정상회담 후 으레 있는 공동 기자회견이나 공동성명 발표는 없었다. 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도 마련하지 못했다. 갈등이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둔 회담이어서 양국 간 소통 창구를 열어둔 정도의 성과만 얻었다.

16일 미국과 중국이 회담 후 내놓은 자료를 보면 정상 간 대화가 얼마나 평행선을 달렸는지 알 수 있다. 백악관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신장, 티베트, 홍콩에서의 중국 관행과 더욱 광범위한 인권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 중 인권문제를 여러 차례 거론했다고 한다. 미 고위 당국자는 “인권문제에 대해 솔직하고 분명한 태도를 보였고, 중국이 국제사회의 규범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통행 규칙’을 변경하려는 시도에 대해 우려했다”고 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민주주의는 하나의 맞춤형 제품이 아니다. 형식이 다르다고 배척한다면 그 자체가 비민주적 행위”라며 “상호존중 위에서 인권문제에 대해 대화하고 싶지만 이를 빌미로 내정에 간섭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중국은 설명했다. 미국 측 인권문제 제기를 내정간섭으로 응수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과 경제 관행으로부터 미국 노동자와 산업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하지만 시 주석은 “경제무역의 본질은 상호 이익이 되는 것”이라며 “미·중 경제무역 문제를 정치화하지 말라”고 했다. 특히 미국을 향해 “국가안보 개념의 남용과 확대, 중국 기업 때리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맞섰다.

두 정상 간 이견은 미·중의 첨예한 갈등 사안인 대만 문제를 놓고 가장 크게 나타났다. 미 고위 당국자는 “두 정상은 대만 문제를 놓고는 연장된 토의가 있었다. 여러 문제에 대해 건강한 토론을 벌였다”면서도 “몇몇 지점에서는 견해차가 분명했다”고 설명했다.

정상회담의 유일한 성과는 양국이 갈등 조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데 있었다. 미 당국자는 “두 정상은 가드레일 설치를 통해 미·중 경쟁을 관리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것이 회담의 주제이고, 이날 회담은 일종의 근본적 출발점”이라고 했다. 또 “우리는 돌파구 마련을 기대하지 않았다. 미·중이 공개된 소통 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진전”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의 미래, 남중국해의 군사 긴장, 사이버 보안 같은 문제에 대해 양국 의견이 갈리기 때문에 통신라인을 열어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시 주석도 “미·중 간 이견이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확대되거나 격렬해지지 않도록 건설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담은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안고 있는 내부 사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제 회복 등의 성과를 내야 한다. CNN은 “바이든 대통령이 국내외에 집중하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는 중국과 관련 있다. 베이징과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시 주석 역시 내년 당대회까지 경제와 외교, 대만 문제 등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