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일가에 돈 빌려준 계열사 2900억 달해… 일부 공시 누락

입력 2021-11-17 04:05

지난해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 계열사가 총수 일가 등 특수관계인에게 빌려준 자금이 2900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효성이 1000억원으로 가장 컸는데,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중 일부가 공시에서 누락된 정황을 포착하고 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16일 ‘2021년 공시대상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을 발표했다. 지난 5월 기준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인 71개 기업집단의 상품·용역 내부거래를 분석했다.

공정위는 올해 처음으로 자금·자산 내부거래 현황을 분석해 공개했다. 2020년도 자금·자산 내부거래를 공시한 연속 지정 기업집단 63개가 대상이다. 분석 결과 49개 집단의 소속 회사가 국내 계열사로부터 차입한 금액은 14조6000억원으로 나타났다. 그중 비금융회사가 계열사인 금융회사로부터 차입한 금액은 3조7000억원(25.3%)이었다. 농협(3조3900억원)이 가장 많았고, 롯데(1200억원), 네이버(800억원), 미래에셋(500억원)이 뒤를 이었다.

또 23개 기업집단 소속회사가 특수관계인(계열사 제외)에게 빌려준 자금은 2900억원이었다. 효성이 1000억원으로 대여금이 가장 컸는데, 이 가운데 공정위는 효성 ASC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373억원을 조현상 효성 부회장에게 대여한 건을 공시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자금 대여 금액 1000억원 중 효성TNS와 굿스프링스가 빌려준 대여금은 단기 대여였고 공시돼 있었다”며 “다만 ASC가 대여한 금액에 대해선 효성이 공시를 위반한 것으로 보고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시장이 전반적으로 덜 발달되고, 사금융 시장이 활발했던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는 총수 등이 소속회사로부터 돈을 빌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후 이런 현상은 극히 드물었다. 공정위는 아직까지 이같은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공시 의무를 위반하면 과태료 처분에서 그치지만, 조사 과정에서 회사가 현저한 우대 조건으로 총수에게 자금을 대여했다는 사실 등이 발견되면 부당 지원 혐의가 적용될 소지도 없지 않다.

한편 71개 그룹의 지난해 내부거래 금액은 전년 대비 13조2000억원 줄어든 183조5000억원이었다. 총수 일가 또는 총수 2세의 지분율이 높을수록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경향은 계속됐다. 총수 2세 지분율이 20% 이상인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22.7%로, 20% 미만인 회사(11.5%)와 2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