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로 돌아가 보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의혹 사태가 터지자 불타는 의지의 말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투기 전모를 다 드러내야 한다”며 “국민이 공감할 만큼 끝까지 명운을 걸고 수사하라”고 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번 조사와 제도개선 방안이 지나친 조치라는 비판이 있더라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했다.
8개월이 지난 지금, 검경의 수사 결과는 전혀 공감되지 않는다. 정부 조치는 지나치다는 생각은커녕 한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사태 직후 LH 직원 A씨를 형으로 둔 대통령경호처 과장이 뉴스에 등장했다. 신도시 예정지인 경기 광명 노온사동에서 2017년 9월 땅을 산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4억8000만원 임야를 함께 산 사람은 A씨 아내와 다른 형제들. 누가 봐도 투기가 의심되는 정황이지만 형제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는 감감무소식이다. 수사기관이 그 결과를 발표한 적이 없다.
국민일보 취재팀이 토지 등기부등본을 뒤져 찾아낸 LH 전북지역본부 4급(과장) 직원 B씨 친인척의 땅 매입 건도 처벌 여부가 불명확하다. B씨의 아내, 형수, 동생은 7촌 당숙 가족과 함께 2017년 7월 노온사동 논을 샀다. 거래금액은 10억6500만원. 여기도 투기 냄새가 물씬 풍기지만 B씨에 대해 어떤 법적 조치가 취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법망을 빠져나간 것 같은 LH 직원들은 또 있다. 참여연대와 민변이 최초로 투기 의혹을 폭로한 땅은 경기도 시흥 7필지였다. 이 가운데 5필지에서 LH 직원 10명의 이름이 나왔다.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직원은 ‘강사장’으로 불리는 강모씨와 장모씨 2명뿐이다. 나머지 8명에 대한 사법처리는? 역시 아무도 모른다. 혐의가 있으면 기소하고, 없다면 그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하는데 수사당국은 잠자코만 있다.
지난 9일 LH 전 부장대우 정모씨의 1심 재판이 있었다. 정씨는 2017년 1월 광명시흥사업본부로 발령이 나고 두 달 뒤인 3월 매제 이씨, 법무사 이씨와 함께 노온사동 필지 4곳 및 건물 1채를 25억원에 구입했다. 이 거래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LH 전북지역본부 직원들은 노온사동에서 집중적으로 땅을 사들였다. 전북본부 직원들이 ‘파인애플’이라는 이름의 부동산 개발 회사를 차린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여러 정황이 정씨 행위의 범죄 개연성을 가리키지만 선고 결과는 무죄였다. 법원이 관대한 탓이 아니었다. 이 사건 판결문을 보면 경찰과 검찰 수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경찰관은 피의자 조사 시 절차를 지키지 않아 법정에서 진술을 인정받지 못했다. 수원지검 안산지청 검사는 혐의 입증에 중요한 서류를 작성한 LH 직원을 조사하지 않고 정씨 등을 기소했다. 무엇보다 공소장에 적히지 않은 사실로 혐의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다 재판부로부터 ‘공소장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법원은 정씨 등의 범행에 대해 ‘강한 의심이 든다’면서도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 판단을 내렸다.
이런 사례들은 수사기관의 허술함뿐 아니라 국정 구멍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이 ‘끝까지 수사’를 강조했지만 이 지시는 현장에서 힘을 잃고 말았다. 청와대는 위기 상황에서 메시지를 관리하는 일까지만 하는 것 같다. 책임감을 갖고 현안을 뚝심 있게 챙기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고? 이런 주장을 반박하는 길은 수사를 제대로, 끝까지 하는 것이다. LH 투기는 아직도 많은 의혹이 남아 있다.
권기석 이슈&탐사팀장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