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근 목사의 묵상 일침] 무엇으로 보답할까

입력 2021-11-17 03:01

신약 초기교회의 본부교회라 할 수 있는 예루살렘 교회에 큰 흉년이 들었었다. 이에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들을 비롯해 이방 지역 교회들을 순회하면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모금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도 서신을 보내 교회 내 문제들로 잠시 중단됐던 모금을 재개해 달라고 요청한다.(고후 8~9장)

바울은 먼저 이웃 교회인 마게도냐 성도들의 선례를 소개한다. 마게도냐 성도들은 어려운 중에도 힘에 지나도록, 그러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구제헌금을 감당했기에 모범사례가 됐다. 그런데 바울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린다”(고후 8:1)고 말한다. 이 표현에는 중요한 신학적 원리가 담겨 있다.

바울은 마게도냐 성도들의 모범적이고 희생적인 헌금에도, 결코 사람의 수고와 헌신을 앞세우지 않는다. 바울은 이러한 헌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부터 나왔다고 말한다. 마게도냐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도구로 쓰임 받았을 뿐이라는 바울의 의식이 녹아 있다.

교회의 수고와 선행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시작된다. 교회는 재정과 조직, 사람의 숫자로 일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 한다. 은혜로 시작해 은혜로 마치는 게 교회 사역이다. 이를 잊는 순간 교회는 공치사의 경연장이 되고 만다. 주의 일을 하면서 사람이나 하나님께 섭섭함이 느껴진다면, 내가 하는 일이 은혜로부터 시작된 것인가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기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연보를 독려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당신의 생명까지 기꺼이 나누어 주셨다. 가장 부요하신 분이 가난하게 되심으로써, 가난한 자들이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는 부요한 자가 되도록 하신 것이다.

성도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은 바로 이 사실로부터 형성돼야 한다. 우리의 삶은 은혜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선물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함을 주시기 위해 스스로를 가난케 하시고 자신을 내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베푸심에 기초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베푸신 은혜는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목적이 있는 선물이다.(고후 9:11~12) 하나님 은혜의 방향성과 목적은 온 세상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교회를 통해 세상에 흘러 나뉜다. 이때 나누는 사람도 감사하게 되고, 받는 사람도 하나님께 감사한다. 은혜의 나눔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더 넘치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에 목적과 사명이 내포돼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교회에 먼저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주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나눠지고 뿌려져서 새 생명을 불어넣는 복된 생명의 통로가 돼야 한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 116:12)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인물로 묘사된다. 큰 환난과 슬픔이 그를 둘러쌌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려, 그가 서원한 것을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많은 한국교회가 이번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킨다. 주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가 되돌려지길 기대하신다. 우리 손에 있는 것이 작아 보일지라도 하나님께 드려져 세상에 나눠질 때, 그것은 더 큰 감사로 하나님께 돌려질 것이다.

송태근 삼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