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생의 원근법에 대하여

입력 2021-11-17 04:02 수정 2021-11-17 04:02

신체 리듬이 뒤죽박죽이다.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다. 전전반측하며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꼬박 날을 새기도 한다. 그런 날은 불면 속으로 뜬금없이 수십년 전의 푸른 추억이 찾아와 기록에의 충동을 부채질한다.

대학 2학년 때 한 여학생을 좋아했다. 일방적이었다. 그녀는 친구 이상의 선을 넘지 않으려 했다. 조바심이 났지만 애정전선에서는 항용 그렇듯 좋아하는 쪽이 늘 약자일 수밖에 없다. 감언이설로 그해 봄, 그녀 생일에 즈음해 함께 내장산에 놀러 가기로 했다. 자랑삼아 승전보를 전하자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무조건 막차를 놓쳐라, 그렇지 않으면 관계가 지속하기 어려울 거라고 조언했다. 녀석들의 애정 어린 충고를 사랑의 교리인 양 철석같이 믿고 서울행 막차 시간표를 몰래 알아두었다. 하지만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갖은 꾀를 부려 막차를 놓치기까진 했는데 아뿔싸, 내가 놓친 기차는 비둘기, 통일호, 무궁화호 같은 보통열차였지 값비싼 새마을호 특별열차가 아니었다.

당시 내 처지나 형편에서 새마을호란 고관대작들이나 타는 기차였으므로 당연지사 내가 생각하는 기차 범주에는 들지 않는 것이어서 마지막 보통열차 시간표만 기억해 두었던 것이었는데 그것이 패착이었다. 보통열차 다음으로 새마을호가 있었던 것이다. 도회 출신인 그녀는 나와는 다르게 새마을호 막차 시간을 미리 셈해 두었던 모양이다. 짐짓 표정을 꾸며 기차를 놓쳐 큰일 났다고 당황해하는 내게 그녀는 입꼬리에 미소를 매단 채 끊어온 두 장의 기차표 중 하나를 내밀었다. 아, 그때의 낭패감이란, 그렇게 해서 친구들의 예상대로 나의 철부지 사랑은 그 여행을 끝으로 질 나쁜 연탄처럼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채 시지부지 끝이 나고 말았다.

내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연애담이 아니다. 그날 산 초입에 막 몸을 들이밀자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진달래꽃이었다. 일정한 거리에서 보는 진달래꽃은 선홍빛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동네 야산의 진달래꽃과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마음에 담고 있는 여인과 함께 보는 꽃이라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환하게 불타오르던 꽃불을 가까이 가서 보니 주변으로 개똥 천지였다. 그러니까 진달래꽃의 찬란함은 개똥들이 피워내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둘러 지나쳐버렸다.

시작과 함께 끝나버린 그녀와의 별리 후 군의 부름을 받았다. 근무지는 드라마 ‘모래시계’ 덕분에 명소가 된 강원 강릉 정동진역 근방 해안부대였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 말에 과장을 실어 표현하면 파도가 기차의 지붕을 타고 넘어와 반대쪽 창문에서 깔깔대는 곳. 어쭙잖은 말의 수사에 갇히길 거부하는 7번 국도 주변의 빼어난 풍경. 내륙 출신인 내게 처음 보는 바다는 황홀 그 자체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내 단조롭고 지루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뒤로는 우뚝 솟은 대관령이 내륙으로 통하는 길을 가로막았고 앞으로는 망망대해가 탈주에의 욕망을 꺾던 협지에서 유형수처럼 보내야 했다.

봄에도 좀체 녹지 않던 대관령 팔부 능선에 쌓인 흰 눈의 백지에 그리움을 촘촘하게 바느질하고, 한 장의 푸른 도화지로 펼쳐진 바다에 온몸을 붓 삼아 기다림을 일필휘지하며 길고 막막한 야간근무를 버텨내고 있었다. 넘실대는 파랑에 상상을 보태는 일만이 위안거리였다. 야간근무 시에 바라보던 수평선에 잇대어 선 오징어잡이 선박들을 수놓던 칸델라 불빛은 무리 지어 핀 꽃떨기였다. 하지만 밤을 수놓던 야화들이 지고 명일 낮 포구로 들어오는 선박들에서는 비린내, 땀내가 진동했다. 추억의 페이지를 장식한 이 두 가지 체험은 내게 세상과 주체 간 심리적 거리를 가늠하는 계기를 가져다주었다.

이재무 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