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시인이 되게 해주세요

입력 2021-11-17 04:07

올해도 어김없이 신춘문예 시즌이 다가왔다. 늘 이맘때면, 올해는 꼭 당선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일출과 함께 문학적 영감이 솟아오르는 제주 성산일출봉 근처에 거주하며 매일 시를 쓰고 기도하던 시절. 남들과 다른 시를 쓰고 싶어서 남들과 다르게 기도하던 시절. 모두가 일출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혼자만 달을 향해 기도하던 시절.

매일 밤 성산일출봉 앞 벤치에 앉아서 달을 기다렸다. 이곳에서는 매일 뒤바뀌는 달의 위치를 찾기 쉬웠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 하늘의 모든 면적이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고요한 달빛 아래 오직 내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했다. 그 간절함에 대답이라도 해주듯 기묘한 생명체가 나에게 날아온 적 있었다. 온몸이 야광으로 빛나는 새가 어둠을 뚫고 내 머리 위로 날아왔었다. 어둠을 비웃는 듯한 빛이었다. 이날의 기억을 사람들에게 아무리 말해도 믿어주지 않지만 분명히 나는 봤다. 기묘한 그 새와의 만남이 나를 신춘문예에 당선시켜 줄 것만 같았다.

그해 기도대로 나는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당선 연락을 받은 장소가 신기하게도 기묘한 새와 마주친 장소였다. 태어나 처음 기쁨으로 뒤덮인 눈물을 흘렸다. 아직도 그곳에만 가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매일 밤 외로이 혼자 남아 기도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날씨가 흐려서 달이 보이지 않는 날이면 먹구름을 향해서라도 기도하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성산일출봉에서 왜 달을 향해 기도하냐며 친구들이 손가락질해도 꿋꿋하던 내 모습을 사랑한다.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달과 독대하는 짜릿한 기분을 말이다. 남들과 다른 시를 쓰고 싶어서 남들과 다르게 기도하던 내 간절함을 말이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기도에도 특별함이 필요하다. 아직도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기도한다. 오직 내 목소리만이 하늘에 한가득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말이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