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변 주머니 단 일곱살이 품은 발레리나 꿈 이루게 하소서”

입력 2021-11-17 03:04
김동현(왼쪽 두 번째) 대전 제자들교회 목사가 지난달 27일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서혜양 가족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 왼쪽부터 아버지, 김 목사, 서혜양, 어머니. 대전=신석현 인턴기자

서혜(가명·7)의 꿈은 발레리나다. 몸에 딱 붙는 발레 옷에 ‘토슈즈’를 신고 중력을 거슬러 뛰어오르는 모습을 상상한다는 서혜는 틈날 때마다 한 다리로 서서 팔을 들어 보인다. 하지만 무대에 서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선천적으로 항문이 닫혀 있는 ‘직장·항문기형’과 점진적인 운동 감각 손상으로 이어지는 ‘계류척수증후군’이 평범한 일상의 벽이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십여 차례 수술과 여러 치료를 받았지만, 여전히 옆구리엔 배변 주머니를 달고 있다. 콩팥도 한 개뿐이고 방광도 기형이어서 자칫 투석해야 할 수도 있다. 면역력도 약하다. 최근엔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돼 힘든 시간을 보냈다. 희망만 가득해야 할 서혜에게 절망은 일상이 됐다.

지난달 27일 대전시 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서혜네 집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신발을 벗기도 전 고음으로 인사한 서혜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손님을 맞았다. 김동현 대전 제자들교회 목사도 “네가 서혜구나”라며 맞장구쳤다. 김 목사의 방문은 국민일보와 월드비전이 함께하는 ‘밀알의 기적’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제자들교회는 21일 서혜를 비롯해 질병과 가난 속에 있는 국내외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밀알의기적 예배를 드리고 지원을 시작한다.

“왜 이리 이뻐? 엄마와 아빠를 고루 닮았구나?” 김 목사의 물음에 서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혜네는 다문화가족이다. 한국인 아버지(52)와 필리핀에서 온 어머니(35), 세 살 많은 오빠와 함께 산다.

서혜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꽃이 피었다. 그럴수록 어린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아직 철이 없어서 그렇지 점점 자기 상황을 알게 되면,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게 벌써 걱정입니다. 안타까워요”.

서혜는 진료를 위해 수시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을 찾는다. 이동 중에는 운전하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서혜를 돌봐야 하다 보니 번번이 집을 비워야 했다. 오빠를 홀로 남겨둘 수 없어 진료 때마다 온 가족이 서울로 간다. 오빠는 그래서 결석이 잦다.

다른 가족도 건강이 좋지 않다. 몇 해 전 교통사고를 당한 아버지는 목이 마비되는 후유증으로 투병 중이다. 사고 후 조울증과 불면증까지 생겼지만 서혜의 치료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시집와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어머니도 아프다. 끝이 보이지 않는 병간호로 인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가난은 가족을 괴롭히는 또 다른 복병이다. 기초생활수급비 150만원이 수입 전부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서혜의 배변 주머니 청소를 위해 아버지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어린이집을 찾는다. 건강도 좋지 않지만, 종일 딸을 돌봐야 하다 보니 직장을 구할 수도 없다.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아파트 임대료와 관리비, 병원비를 모두 해결해야 하는 건 큰 부담이다. 서혜가 먹는 소아 환자용 영양식을 사는 데도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 진료를 위해 서울을 오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현실의 여러 벽이 이 가정을 옴짝달싹 못 하게 붙들고 있어 보였다.

재롱을 부리는 서혜를 보며 웃음 짓던 김 목사도 순간순간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엄마가 기도를 많이 하셔야 해요. 아시겠죠?” 김 목사가 기도를 권하자 “알겠어요”라는 답이 힘없이 돌아왔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가족의 바람은 하나다. 아버지는 “딸이 너무 고생하고 있다. 잘 치료받고 이제는 건강해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함께 기도하자고 말한 뒤 서혜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이 가정을 사랑하시는 주님. 주님이 택하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걸 감사드립니다. 이쁘고 똘똘한 서혜, 주님 아시듯 여러 가지로 어렵습니다. 수술 잘 받게 도와주시고 주님이 재정적인 문제도 해결해 주소서. 서혜가 평범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시고, 믿음을 주셨으니 주님 사랑 안에서 잘 자라 발레리나의 꿈을 이루게 하옵소서. 어떤 수술을 받더라도 집도의의 손을 붙들어 주셔서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칠 수 있게 해 주소서. 건강한 모습 회복할 수 있도록 주님이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혜 부모님도 “아멘”이라고 했다. 곧이어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 잘 될 겁니다. 믿습니다”. 김 목사는 발레를 하는 모습을 흉내내던 서혜에게 한번 안아보자고 했다. “아이 이쁘다. 힘내거라. 서혜가 건강해져서 발레리나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목사님이 늘 기도할게”라고 한 뒤 팔에 힘을 더했다.

대전=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