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이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또 드러났다. 지난 5월 공군 여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에 국민 모두 분노하던 바로 그때 군에서는 또 다른 여하사의 성추행 사망 사건이 단순 자살로 은폐되고 있었다. 박인호 공군참모총장이 취임식에서 분골쇄신의 각오를 밝힌 직후 공군 검찰은 가해자의 성추행과 증거인멸을 빼놓고 기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격노하면서 엄정한 조사·조치를 지시했고 서욱 국방장관이 대국민사과를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유족들이 정보공개청구로 수사기록을 확보한 뒤에야 피의자를 강제추행 혐의로 추가 기소했을 뿐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군인권센터의 15일 기자회견은 충격적이다. 공군은 처음부터 강제추행 혐의를 수사해 기소했다고 밝혔지만 은폐 관련 의혹은 해명하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육·해·공군 가릴 것 없이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고, 엄정 대처와 재발 방지 약속이 반복되지만 바뀌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국방부 검찰단이 지난달 발표한 공군 여중사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대통령이 사과하고, 국방부 장관이 숨진 여중사의 빈소에서 진상규명을 약속하며, 군의 첫 특임검사가 수사를 벌였지만 결과는 형편없었다. 사건을 봉합하거나 은폐한 군 경찰·검찰 및 지휘책임자는 모두 면죄부를 받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선 젊은이가 성추행을 당해도 알려지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 ‘재수 없이 걸려도’ 감옥에는 가지 않는다는 썩어 빠진 생각을 뿌리 뽑지 못한다면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다. 이번 사건의 진상은 군과 국방부를 배제한 외부기관에서 밝혀야 한다. 증거인멸로 훼손된 수사를 다시 실시하고, 은폐 의혹 및 보고 계통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수사 및 기소 과정이 낱낱이 공개돼야 한다. 그에 앞서 국방장관은 즉각 경질돼야 한다. 분노한 국민의 목소리를 엄중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군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