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16일 오전(한국시간) 화상을 통해 마주할 회담에 글로벌 금융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진행된 경제 및 외교갈등 와중에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인한 인플레 우려까지 확산하는 시점에 회담이 열려 기대치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만 문제와 홍콩 인권 등의 ‘뜨거운 감자’를 가급적 건드리지 않고 양국 간 갈등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에 비해 두 국가의 갈등 국면이 진정돼 보이기는 하지만 경제안보와 관련해선 한 치의 양보가 없는 것으로 볼 때 기대치를 너무 높이지는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미 백악관과 중국 외교부가 ‘정상회담’이 아닌 ‘화상 회의(virtual meeting)’란 용어로 두 정상의 만남을 지칭하고 공동성명조차 기대하지 말 것을 주문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15일 “바이든 정권은 이전 트럼프 정권하의 보호무역 기조를 유지하고 중국은 권위주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공급망을 무기 삼아 경제안보의 패권을 쥐려고 하는 인식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미중 동병상련
다만 양국이 공통으로 맞딱뜨린 인플레와 저성장 국면, 즉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해소하려는 공감대를 마련한다면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인플레를 적기에 해소하지 못하면 양쪽 모두에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어 일종의 ‘적과의 동침’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중 양국의 최근 물가 상승세를 보면 심각한 상황임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의 지난달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13.5%로 1996년 통계작성이래 최고치를 보였다. 전월대비로는 2.5% 상승해 9월의 1.2% 상승률을 2배 앞질렀다.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2%로 6개월 연속 5% 이상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생산자 물가 상승률도 전월대비 0.6%로 9월의 0.5%에 이어 고물가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3분기 경기는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양국 모두 금리를 동원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중국의 경우 금리를 내리거나 지준율을 낮추는 부양책은 오히려 물가 불안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 더구나 이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최우선시하고 있는 시 주석의 정책과도 배치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에너지 등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물가 압력의 기저에는 미·중 갈등에서 파생된 중·호주 외교 갈등과 더불어 전세계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병목 현상이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에서 중국내 정책만으로 물가압력을 조기에 수습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미국도 이달 시작해 내년 6월쯤 마칠 예정인 테이퍼링(자산매입축소) 외에 금리 인상을 앞당겨서는 공급망 차질사태를 해소할 수 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공급망 차질의 원인 하나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대거 떠나 발생하는 노동시장 수급 불균형인데 금리를 올릴 경우 오히려 임금상승 효과를 상쇄해 역효과를 낼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아프간 사태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한 상황에서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마저 참패한 바이든 대통령이 최대 현안인 인플레 우려를 해소하지 못할 경우 내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장기집권 틀을 마련한 시 주석 역시 중국의 체제 특성상 대미 강경 기조를 유지할 수 밖에 없지만 심각한 내부 경제 여건을 고려하면 미국과의 갈등 완화가 시급하다.
‘폭탄관세’ 인하가 첫 해법될 수도
두 정상이 지정학적 갈등과 경제현안을 잠시 분리시켜 인플레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그래서 나온다. 혼자는 할 수 없으나 상대방 손을 잡아야만 해결되는 뜨거운 현안이 바로 현재 전개되고 있는 공급망 차질로 인한 고인플레 상황이기 때문이다.
박 연구원은 “중국 리스크 그늘에 가린 국내 경제입장에서도 중국이 스태그플레이션 리스크를 어떻게 해소시킬지가 국내 경기 흐름은 물론 심화되고 있는 한·미 증시 차별화 현상 완화에 중요한 변수”라고 말했다.
이와관련 금융시장에서는 인플레 문제 해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올 구체적 해법이 무역갈등 해소책,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투하한 ‘폭탄관세’ 인하가 첫 단추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관세를 인하하면 ‘디스 인플레’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인플레를 진정시키는 대책으로 중국과 상호 관세인하를 모색할 것을 내비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이투자증권 보고서를 보면 장기 하락세를 보이던 미국 소비자물가 항목 중 내구재 관련 물가 지수가 2018년 9월 이후 상승세로 전환한 것은 미국의 대중국 제품 고율관세 부과와 무관치 않다.
미국이 최근 호주 일본 등 동맹국들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과한 고율관세 해소에 나선 것도 인플레 해소를 위한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세계화·법·사회 센터(GLAS)의 그레고리 셰퍼 소장은 BBC방송 인터뷰에서 “최근 유럽과 했던 것처럼 특정 분야의 관세를 완화하는 형태의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중 1단계 무역협상 종료를 앞두고 중국의 이행률이 60% 수준에 머물러 있어 이 문제가 회담 진척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