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필)의 1월 1일 신년 음악회는 자국인 오스트리아는 물론 전 세계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의 흥겨운 왈츠와 폴카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신년 음악회는 전 세계 40여개국에 생중계된다. 올해 신년 음악회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사상 처음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신년 음악회의 지휘자는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 리카르도 무티(80). 180년 전통의 빈필은 1954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사후 특정한 음악감독 없이 객원 지휘자 제도를 두고 있는데, 무티는 71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처음 만난 이후 50년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둘의 관계는 무티가 생존 지휘자로는 가장 많은 6번이나 신년 음악회를 지휘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무티가 이끄는 빈필이 한국을 찾았다. 14~17일 서울 대전 부산에서 4회 공연하는 일정이다. 빈필과 무티는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함께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이번 공연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첫 자가격리 면제로 성사된 내한공연이다.
빈필은 원래 일본 한국 중국을 잇는 아시아 투어를 기획했다. 하지만 엄격한 방역정책을 고수하는 중국의 불허로 위드 코로나가 도입된 일본과 한국에서만 연주한다. 단원을 포함한 120명이 백신 접종을 완료한 빈필은 지난 3일 전세기로 일본에 도착해 도쿄 등 4개 도시에서 7회 공연을 마친 후 12일 한국에 들어왔다. 호텔 및 공연장 동선 이외에 외부 출입 금지 등을 조건으로 지휘자 및 오케스트라 단원 등을 포함해 총 120명이 자가격리 면제를 승인받았다.
빈필 내한 투어의 첫 무대가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약 3000석 중 4연석까지 가능한 거리두기를 적용한 객석 2400석 모두 일찌감치 매진됐다. 이날 프로그램은 모차르트의 교향곡 35번 ‘하프너’ Op.385와 슈베르트 교향곡 9번 ‘그레이트’ Op.944였다. 두 작곡가 모두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빈에서 활동했다.
하프너 교향곡은 잘츠부르크의 하프너 가문의 축전을 위해 썼던 세레나데를 후일 편곡한 작품으로 모차르트의 후기 걸작 교향곡의 개막을 보여준다. 빈 고전파의 황금시대를 여는 하이든에서 영향을 받은 엄격한 구성 속에 활기 넘치는 선율이 돋보인다.
그레이트 교향곡은 슈베르트의 최후이자 최대 교향곡이다. 어렵다는 이유로 생전에 연주되지 못하다가 사망 10년 뒤에 슈만이 발견해 멘델스존 지휘로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가교 역할을 했던 슈베르트의 작품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후배 작곡가들이 빛을 보게 만든 것이다.
빈필은 이날 ‘빈필 사운드’(Wiener Klangstil)로 불리는 특유의 우아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제대로 보여줬다. 빈필의 관악기는 19세기 후반 빈에서 사용하던 악기의 전통을 유지하기 때문에 개량이 많이 이뤄진 악기를 쓰는 다른 오케스트라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빈필 사운드에는 ‘황금빛’ ‘벨벳 같다’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다목적 공연장인 데다 규모가 크다 보니 빈필 사운드를 느끼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빈필과 무티의 50년 호흡 앞에선 문제 될 게 없었다. 무티는 청중의 환호에 콘서트 마지막 즈음 미소를 띠었으며 빈필 단원들은 발을 구르며 답례했다.
빈필은 자존심과도 같은 왈츠를 콘서트 앙코르곡으로 마무리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경쾌한 ‘황제’ 왈츠 Op.437은 관객들이 코로나 팬데믹의 피로감을 잠시나마 잊게 해줬다.
빈필은 이번 내한공연에서 각각 세종문화회관과 부산, 예술의전당과 대전으로 나눠 다른 레퍼토리를 연주한다.
예술의전당과 대전에선 슈베르트의 교향곡 4번 ‘비극적’ Op.417, 스트라빈스키의 디베르티멘토 ‘요정의 입맞춤’,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Op.90을 연주한다. 부산 공연에선 백신 패스를 적용해 거리두기 없이 객석을 오픈하기로 했다. 백신 접종 완료자(2차 접종 후 2주 경과)와 48시간 내 PCR 검사 음성 확인자만 입장할 수 있다. 유료 공연으로는 국내에서 백신 패스가 처음 적용되는 사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