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폐 질환자 생존의 최후 대안
뇌사자의 장기 기증도 부족하고
이식에 사용한 경우도 31% 불과
재활 통해서 호흡 근육량 늘려야
뇌사자의 장기 기증도 부족하고
이식에 사용한 경우도 31% 불과
재활 통해서 호흡 근육량 늘려야
말기 폐 질환자의 생존을 위한 최후 대안인 폐 이식이 증가 추세다. 가습기살균제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사회적 이슈가 된 의료 사건의 피해자 일부가 폐 이식 대상이 되면서 각 의료기관이 폐 이식을 병원 역량을 가늠하는 척도로 인식해 적극 시행에 나섰기 때문이다. 최근엔 코로나19 감염으로 폐 기능이 떨어져 폐 이식을 고려하는 환자들도 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폐이식팀 이진구 흉부외과 교수는 15일 “코로나19 감염자가 증가하면서 폐 손상이 동반돼 에크모(인공 심폐기)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늘었다”면서 “폐렴에 의한 폐 손상의 경우 일부 환자는 회복해 에크모를 뗄 수 있지만 일부 환자는 회복되지 않고 ‘섬유화 과정(폐 조직이 딱딱하게 굳음)’을 겪는다. 이들 중 일부가 폐 이식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폐이식연구회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국내에서 이뤄진 폐 이식의 10% 정도는 코로나19 감염에 의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폐 이식은 150건이 시행됐으며 올해는 160건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발 델타 변이 유행과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전환으로 감염자와 중증 환자가 급증하는 추세여서 올 하반기나 내년 초에는 폐 이식 환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다른 장기와 마찬가지로 뇌사자 장기 공여의 부족 탓에 폐 이식을 받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5월 31일 기준 277명이 폐 이식을 절박하게 기다리고 있다. 평균 대기 기간은 234일이다. 대기 순위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약 30%는 1년 안에 세상을 떠난다. 폐 이식 대상의 증가와 함께 대기 기간도 점점 길어지는 만큼, 적극적인 뇌사자 기증이 필요하다고 의료계는 말한다.
고난도 폐 이식… 뇌사자 폐 31%만 사용
폐 이식은 장기 이식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수술이다.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를 이식해야 하는 어려움과 함께 다른 장기 이식과 달리 인공 심폐기를 돌려야 하는 번거로움도 따른다. 수술 시 심장에서 나오는 혈액을 몸 밖으로 빼내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체내로 넣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폐의 특성도 이식을 까다롭게 한다. 뇌사자 기증을 통해 폐를 얻는다 해도 막상 이식할 수 없는 상태인 경우가 많다. 폐는 외부와 통하는 유일한 장기로 바이러스와 세균 등에 노출되기 쉽다. 또 뇌사가 발생하면 기능 저하가 다른 장기에 비해 빠르다. 실제 지난해 국내 뇌사자의 폐 중 이식에 쓰인 것은 31%에 불과했다.
이 교수는 “뇌사 판정까지 상당 기간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끼고 생명 유지를 위해 많은 약물을 투입받는데, 그 과정에서 감염에 노출되고 가장 먼저 폐가 영향을 받아 폐렴 등 합병증이 동반될 수 있다. 폐렴이 생긴 폐는 이식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나친 흡연력이 있는 폐도 사용이 어렵다.
이런 이유로 국내에서 폐 이식이 가능한 의료기관은 채 10곳이 안된다. 세브란스병원은 1996년 국내 첫 폐 이식에 성공한 후 폐 이식을 선도하고 있다. 2010~2020년 국내 전체 폐이식(878건)의 40%(348건)를 도맡아 했다. 2015년 이후 매년 40~50건씩 시행하고 있다.
치료 성적도 우수하다. 수술 전 에크모 및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중증 환자의 비율이 외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상황에서도 세계 평균 5년 생존율 50%를 넘어섰고, 조혈모세포(골수)이식 후 생긴 폐섬유화증, 기관지확장증 등 일부 질환에서는 5년 생존율이 60~70%에 이른다. 이 병원 폐 이식팀은 흉부외과와 호흡기내과, 심장내과, 심장혈관외과, 재활의학과, 중환자실, 마취통증의학과, 감염내과, 장기이식센터 등 다양한 진료과로 구성된 ‘다학제 진료’가 강점으로 꼽힌다.
코로나 환자, 폐 이식 않고 재활로 회복
수술 못지않게 강조되는 것이 폐 이식 전후의 ‘재활 치료’다. 이식 대상자는 폐 기능이 나빠져 활동 범위가 줄고 특히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나 에크모를 달고 장기간 누워있는 경우 호흡 근육 등 전신의 근육량이 급격히 감소한다.
이 교수는 “폐는 외부 공기를 안으로 넣어주고 안의 이산화탄소를 몸 바깥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 횡격막과 근간사이근 같은 호흡 관련 근육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이러한 근육량이 감소하면 아무리 기능을 잘하는 폐가 이식돼도 효과적으로 공기를 넣어주지 못해 호흡곤란을 겪게 된다. 이식 전후 재활을 통해 환자의 호흡 근육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환자는 재활 전문가로부터 이식 전 호흡 근육부터 상·하지 근육, 코어(중심)근육 등의 성장을 돕는 치료를 받는다. 수술 후엔 새로 이식받은 폐가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게 침상에 누워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홀로 앉고 걷는 과정을 반복해 호흡 능력을 높인다.
폐 이식 환자의 입원 기간은 보통 4주 전후인데, 적극적인 재활을 거친 환자의 경우 퇴원까지 약 20일이 걸려 10일 정도 단축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중증 환자의 경우 1년 생존율이 50% 정도지만 재활을 통해 어느 정도 활동이 가능해진 이들의 1년 생존율은 90%에 육박한다”고 했다.
폐 이식 없이 재활 치료만으로 난치성 폐질환을 극복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폐 이식은 수술 후 평생 면역억제약을 먹어야 하는데, 그런 부담을 덜 수 있다.
실제 코로나19 감염 후 폐 기능 악화가 빠르게 진행된 56세 여성은 1주일 만에 에크모를 달았고 적극적 치료에도 폐 섬유화가 지속 진행됐다. 의료진은 폐 이식을 고려하는 동시에 재활 치료를 시도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노력 덕분에 환자의 폐는 차츰 호전을 보여 입원 2개월 반 만에 에크모를 뗄 수 있었다. 환자는 스스로 호흡이 가능해져 무사히 퇴원했다.
이 병원 폐 이식팀은 지금까지 7명의 코로나19 환자를 의뢰받아 에크모와 재활로 1명, 폐 이식으로 1명을 치료해 일상으로 돌려보냈다. 현재 3명을 에크모와 재활로 치료 중이다. 2명은 치료 중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폐 이식팀 박무석 호흡기내과 교수는 “폐 이식은 꼭 필요한 환자에 한해 시도하며 환자의 일상 복귀와 편안한 숨을 선사하기 위해 맞춤형 치료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