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선 후보들, 외교안보 발언 신중해야 한다

입력 2021-11-15 04:01
연합뉴스

대선을 4개월 앞둔 주요 정당 후보들의 경솔한 발언이 걱정스럽다. 국내 정치·사회 사안이라면 어떻게든 수습하겠지만 외교안보 분야에서 툭툭 던지듯 나오는 후보들의 설익은 발언은 국익을 해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선 후보의 발언이 갖는 무게가 가볍지 않고, 상대 국가는 그 발언을 토대로 차기 정권을 향한 기본 정책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2일 방한한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을 면담하면서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언급했다. 미국이 1905년 필리핀 종주권을 인정받는 대가로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를 묵인했다는 조약으로,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사전 교감이 없었다면 110여년 전 일로 한국의 식민지화 책임을 미국에 추궁한 격이 된다. 집권 여당 대선 후보가 마음 속에 반미 감정을 담고 있다고 해석해도 할 말이 없는 발언이다. 이 후보뿐이 아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같은 날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주종관계로 전락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겠다”고 발언했다. 문재인정부의 대북 정책과는 기본방향이 다른 야당의 대선 후보지만 지난 5년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주종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해 근본적으로 부정했다는 점에서 불필요하게 강경한 발언이다. 게다가 윤 후보는 “(사드 추가 배치는) 안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우리 정부의 주권 사항”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국방력만 강조하는 지지자들과의 대화도 아닌 외신기자들과의 회견장에서 급변하는 외교안보 사안을 굳이 칼로 무 자르듯 선명하게 말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지금 한반도 주변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미·중의 패권 경쟁 속에 하루하루가 조심스럽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시진핑 신시대’를 맞은 중국은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내세우며 주변국을 힘으로 누르려는 시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면서 중국과의 긴밀한 협력으로 경제적 이익을 도모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치밀한 전략과 신중한 행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최소한 외교안보 사안에서만큼은 전문가와 깊이 논의하고 심사숙고한 뒤 의견을 밝혀야 할 것이다. 표 계산만 앞세운 ‘프레임 씌우기’로 주변국을 자극하며 국익을 해쳐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