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스타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33)는 2019년 2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다발성 경화증은 뇌 척수 중추신경 등의 여러 부위에서 신경세포가 손상돼 발생하는 질환으로 어지러움, 마비 및 감각 이상, 시력장애 등의 증상을 수반한다. 영국이 낳은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1945~1987)를 죽음으로 몰고 간 병이다.
독일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트는 4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이듬해 뮌헨에서 첫 연주회를 열며 신동의 탄생을 알렸다. 2007년 독일의 저명한 음악 전문지 ‘포노포룸’에서 최고의 라이징 스타로 선정됐고 독주, 실내악,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세계 무대를 바쁘게 돌았다. 아름다운 외모와 맨발 연주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꼽힌다. 2010년 런던 심포니와 협연부터 맨발로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그는 “맨발로 페달을 밟는 것은 피아노와 더 가까워지는 나만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은 후 연주 횟수를 줄였을 뿐, 연주를 중단한 건 아니다. 아직 병이 연주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뒤프레 때보다 의학이 발전해 질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다. 덕분에 그는 지난 6월 새 음반 ‘삶의 메아리’(Echos of Life)를 발표했다. 이 음반은 쇼팽의 ‘스물네 개의 전주곡 Op.28’과 함께 중간중간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곡을 넣은 형식으로 돼 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애정과 함께 연주자로서 꾸준히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담겼다.
그가 오는 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노장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지휘하는 KBS 교향악단의 정기 공연에 협연자로 선다. 한국 무대는 2006년과 2014년에 이어 세 번째지만 협연은 처음이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과 함께 클래식계의 내한 공연이 속속 확정되는 가운데 연말까지 오트를 비롯해 세계적 피아니스트들의 콘서트도 잇따라 열린다. 21일에는 폴란드 출신으로 지난해 클래식계 최고 권위를 가진 ‘그라모폰상’ 피아노 부문 수상자인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52)의 리사이틀이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안데르제프스키는 4년마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선정하는 ‘길모어 아티스트상’을 2002년 수상하는 등 피아노계를 호령하는 대가 가운데 한 명이다. 4년 만의 내한인 이번 공연에선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2권의 24곡 중 12곡을 발췌하고 재구성해 그라모폰상을 수상한 음반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들려준다.
러시아 출신의 ‘영원한 피아노 신동’ 예프게니 키신(50)도 3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2살 때 음악 천재성을 보인 키신은 6살에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원의 영재 특수학교에 입학해 안나 파블로브나 칸토르를 사사했다. 키신은 대부분 연주자가 콩쿠르 우승을 통해 스타덤에 오르는 것과 달리 어릴 때부터 독보적인 연주로만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키신은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부터 자신의 특기인 쇼팽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펼친다.
올해 쇼팽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인 캐나다 출신 브루스 리우(24)는 우승에 따른 세계 순회연주의 일환으로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윌슨 응 지휘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쇼팽 콩쿠르 결선 연주곡인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스비야토슬라프 리히테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등 전설적인 거장들과 함께 러시아 피아니즘을 대표하는 엘리소 비르살라제(79)도 3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와 알렉세이 볼로딘 등 많은 제자를 키워낸 비르살라제는 2017년 첫 내한 당시 완벽한 테크닉으로 한국 관객을 감동시켰다. 다음 달 2일에는 금호아트홀에서 쇼팽 발라드 2번 3번, 모차르트 소나타 14번 등을 들려준다.
같은 날 롯데콘서트홀에서는 2013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이스라엘의 보리스 길트부르크(37)가 지중배 지휘 서울시향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같은 달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선 200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한 러시아의 미로슬라브 쿨티셰프(36)가 리사이틀을 연다. 베토벤 소나타 31번과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7번 ‘전쟁 소나타’ 등을 연주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