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그리스도인의 생태

입력 2021-11-16 03:05

“이 금도끼가 네 도끼냐”란 말로 유명한 전래동화 ‘금도끼 은도끼’는 어릴 적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동화입니다. 정직한 나무꾼은 금도끼를 얻고 욕심쟁이 나무꾼은 쇠도끼마저 잃게 됐다는 이야기를 통해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진실’과 ‘성실’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시 100:5).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진실하시고 성실하시므로 그분의 자녀인 우리도 성실하고 진실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뉴노멀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요즘 환경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태교육, 생태 감수성, 생태 도시 등 ‘생태’라는 단어를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생태’란 무슨 의미일까요.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제각기 살아가는 모습을 갖고 있으며 그 삶의 모습에는 질서와 지위가 있습니다. 즉, 창조질서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생태(生態)’입니다.

동물과 식물들의 생태계를 살펴보면 한 공간에 생태적 지위가 같은 종(種)은 별로 없습니다. 자연은 ‘경쟁 배타의 원리’에 따라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자와 호랑이를 같은 선상에서 생각합니다. 싸움하면 누가 이길까요. 하지만 사자와 호랑이는 같은 공간에 살지 않습니다. 사자는 들판에 거주하고 호랑이는 숲에 거주하기 때문에 같은 공간에서 서로 싸울 일이 없습니다.

새 중에서도 독수리와 부엉이는 상위 포식자에 해당합니다. 독수리와 부엉이가 서로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역시, 독수리와 부엉이는 만날 시간이 없습니다. 독수리는 낮에 활동하고 부엉이는 밤에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모든 생물이 평화롭게 공존하도록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 역시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기보다는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경쟁하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창조주의 뜻과 너무 다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전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함께 더불어 사는 생명공동체가 아닌 ‘오직 나의 유익’을 위해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이용하고 버릴 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성실하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이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 생태(生態)는 욕망을 추구하는 본성을 내려놓고 모든 피조물을 위해 자기를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세상’(the world) 즉,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고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도 모든 피조물과 함께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자기를 버리신 예수님이 외치셨던 하나님 나라, 그 나라는 다양한 생명이 서로 공존(共存)하는 생명력 넘치는 세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태계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 나라도 우리 가운데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김신형 목사(자연드림교회)

◇자연드림교회는 충남 예산에 있는 교회로 올해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과 이웃과 만남이 자연스러우며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닮아가는 신앙공동체를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