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를 통해 믿음은 무엇이며, 무엇을 믿는 게 믿음인지를 함께 알아봤으면 합니다.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내가 전한 이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천사라도 저주받는다”고 말합니다. 구원을 얻고 성령을 받은 게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인한 건지, 행함으로 인한 것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가 있습니다. 외부 두려움 때문에 무서워서 하는 행위가 있고 책임과 의무감에 하는 행위가 있습니다. 외부 요소만 제거되면 더 그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순수한 동기로 나를 움직여 가는 게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떤 어려운 환경에도 막을 수 없습니다. 지치지 않으며 기쁨으로 자원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다른 차원에서 나를 움직이는 건 무엇이 믿어졌을 때입니다.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것과 믿고 행하는 건 다릅니다. 이 모든 게 하나 될 때 말씀을 따라 순종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릴 수 있었던 것도 “내가 그를 죽일지라도 하나님이 다시 살려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었기에 칼을 내리칠 수 있었습니다. 안다고 하면서, 믿는다고 하면서 행하지 않는 건 믿지 않아서입니다. 나를 움직일 수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다음은 믿음은 보이지 않는 실체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존재하는 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 사랑 구원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믿음은 없는 걸 있는 것처럼 자기암시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구원은 내가 노력한다고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와 사망 가운데 태어났기에 내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죄의 열매입니다. 이 몸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이룰 육체는 없습니다. 이룰 수 없기에 이미 아들을 통해 다 이뤄놓으신 걸 믿으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십자가로 다 이루신 걸 믿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동참하고 순종한다는 점에서 행위와 믿음은 반대의 개념입니다.
마지막으로 율법을 모를 때는 내가 율법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신구약의 믿음은 오실 분과 오신 분을 믿는다는 게 다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수많은 제사를 드릴 때 언젠가 오셔서 자신들의 죄를 사하시리라 믿었습니다. 따라서 구약은 죄를 덮어놓는 것입니다.
신약시대는 그분이 오셔서 십자가로 다 이루신 걸 믿는 믿음입니다. 내가 나의 행위를 믿는 믿음과 다릅니다. 죄의 종노릇하던 우리를 십자가로 해방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를 모르고 내가 율법을 지키려고 한다면 하나님과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성경은 내가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달으라고 주신 겁니다.
결론입니다. 율법을 지키려는 ‘열심’이 믿음인 줄 알았습니다. ‘열심을 내라’ ‘봉사하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그게 믿음인 줄 알았습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는 것이 신앙생활인 줄 알았고, 열심히 하면 천국 가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나의 의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는 겁니다. 내 행위가 기준이 된 ‘나를 믿는 믿음’은 필요치 않습니다. ‘주님이 이미 다 이루신 것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진리를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내신 아들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걸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 후 내 안에 주님이 오셔서 그분의 말씀, 영에 순종하는 삶이 남아있게 됩니다. 이미 다 이루신 말씀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진리가 결론되게 하라.’
유평안 이천열방교회 목사
◇유평안 목사는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 회원 목회자로 이천열방교회를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