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후보자 김헌동씨가 짓겠다고 자신하는 분양가 3억원짜리 강남 아파트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집이 될까. 그럴 리가. 무슨 기준으로든 결국 또 소수에게 돌아갈 테고, 그 누군가에게 로또가 될 3억원짜리 강남 아파트들은 ‘내 집’을 갖지 못한 다수의 상대적 박탈감만 더 자극하게 될 것이다. 노골적으로 보이는 손(극단적 정책)이 빚어내는 박탈감은 보이지 않는 손(자유시장원리)에 맛보게 되는 그것보다 클 수밖에 없다.
실현 가능성은 별개로 하고, 3억원짜리 강남 아파트가 수백 채 지어지면 서울시민의 주거는 안정될까. 글쎄. 그럼 집값이라도 좀 떨어질까. 다른 지역은 몰라도 강남 집값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강남 집값이 안 빠지면 서울 다른 곳도 쉽게 안 빠진다. 서울이 안 빠지면 서울 근교를 비롯한 수도권 집값도 빠지기 어렵다. 3억원짜리 아파트는 괜찮은 집일까. 김헌동씨 말대로 100년, 200년씩 살아야 한다면 되도록 근사하게 지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집을 가격만 낮추다 결국 싸구려로 지어놓고 “거 봐라, 3억짜리 집 가능하지 않으냐”고 말한다면 그건 기만이다. 명색이 강남에 들어서는 집이니 뭘 어떻게 지어도 사람들은 군침을 흘릴 거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재명씨 표현처럼, 무주택자를 원시인 취급하는 꼴이다.
강남 아파트를 3억원에 만들 수 있다는 토지임대부 주택이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토지는 빌려주고 건물만 넘겨주는 방식. 집주인은 건물 소유권을 갖되 그 건물이 선 땅은 빌린 것이니 매달 별도 임대료를 낸다. 임대료는 요즘 아파트 담보 대출 이자에 비하면 가벼운 수준이니 토지임대부 주택은 어찌 보면 영리한 방법이다.
이제 건설사만 잘 으르면 주변 시세보다 싼 집을 내놓을 수 있다. 그렇게 강남에 3억원짜리 아파트가 나온다고 치자. 그 뒤엔 어떻게 될까. 매매 시점엔 집값이 적어도 7배는 올라 있지 않을까. 그 집은 나올 때부터 ‘3억짜리 아파트’라 쓰고 ‘17억 차익’이라 읽힐 것 같다. 강남 자곡동 30평대 아파트 LH강남브리즈힐은 서울 내 대표적 토지임대부 주택이다. 2014년 10월 완공된 이 아파트는 분양가가 2억원 안팎이었다. 지금 실거래가는 매매 13억원대, 전세 8억원대다. 일부 타입 호가는 대출도 안 나오는 15억원을 넘겼다.
일부에게 로또 아파트를 선물할 목적이 아니라면 매매 시 공공기관에 되팔도록 하는 조건을 걸거나 전매 제한을 다른 집들보다 월등히 길게 잡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겠지만 이미 모두 실패했다. 이런 방식을 적용해 2007년 군포 부곡지구에 공급했던 아파트는 10채 중 9채 이상(약 92%)이 주인을 찾지 못했다. 지금 토지임대부 주택은 투기과열지구에 있는 아파트라도 전매 제한이 다른 주택의 절반(5년)으로 짧다. 이런 로또 아파트도 드물다.
“아파트를 처음부터 잘 지으면 100년, 200년 수리하고 살아도 무슨 문제냐.” 김헌동씨가 유튜브 채널에서 했다는 발언이다. 이렇게 말하는 수준이라면 3억원짜리 강남 아파트도 세심한 검토 끝에 나온 정책은 아닐 듯하다.
왔다 가면 되는 이들은 일단 뱉고 어떻게든 비슷하게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3억원짜리 강남 아파트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 원리 무시하고 건설사 목을 죄면 생색은 낼 수 있는 가격의 아파트가 나올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후에도 집값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3억원짜리 아파트가 20억원이 되고 나면 자신의 몰이해를 인정하기보다 시장의 광기를 주장하지 않을까. 그런 태도. 자신들이 비판하는 이 정부와 뭐가 다른가.
강창욱 국제부 차장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