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교육부는 시·도 교육청 평가에 특성화고(직업계고) 양적 취업률 평가지표를 폐지했다. 학교가 형식적인 취업률에 얽매여 학생들의 일자리 질 문제를 등한시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2017년 제주도 한 생수회사에서 현장 실습을 하던 서귀포산업과학고 3학년생 이민호군이 프레스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한 사고가 계기였다. 그러나 신입생 모집부터 취업률은 일반계고의 주요 대학 진학률처럼 특성화고 평가에 여전히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으며, 학교로서도 취업률 수치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명예의 전당’ 취업처엔 매표소 알바
세무회계를 전공한 박민태(18·가명)군은 지난달부터 중소 약품회사에서 취업연계형 현장실습을 하는 중이다. 주문 들어온 약품의 재고를 확인하고 약품을 포장한 상자를 옮기는 게 박군의 주요 업무다. 박군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줄곧 서서 단순 업무를 반복하다 퇴근한다.
그는 비싼 등록금을 내야하는 대학에 진학하기보다 일찍 취업을 하자는 생각에 경기도의 한 특성화고에 진학했다. 세무회계를 전공으로 택해 입학하자마자 학원에 다니며 세무회계 2급 자격증도 땄다.
취업연계형 현장실습 기간이 시작되자 선생님은 박군에게 세무회계와 물류 업무를 같이 할 수 있는 ‘반사무직’ 일자리를 소개해줬다. 그마저도 실습생을 뽑을 계획이 없다는 기업에 학교 선생님이 사정을 해 만들어진 자리였다고 했다.
회사는 박군에게 사무직이 아닌 물류 전담직 업무를 지시했다. 취업처를 다시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학교 측은 “다른 회사는 접촉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군은 “취업을 하긴 했지만 실습생 입장이라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며 “안 그러면 이 일자리도 사라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 특성화고 학생은 “이맘때 교무실에 가면 ‘명예의 전당’이라며 학생들 얼굴과 취업처, 취업률이 담긴 게시판이 걸리는데 영화관 매표소 직원, 놀이공원 안내원같은 단순 아르바이트 자리가 매칭돼 있다”며 “이 취업률은 학교 홍보용 자료로 쓰인다”고 전했다.
일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취업연계형이 아닌 경우에는 현장실습이 알맹이 없이 그저 시간만 때우다 끝나는 경우도 있다. 세무회계 전공으로 현재 한 세무법인에 실습을 나가고 있는 김모(18)양은 이따금 세금계산서를 프로그램에 옮기는 일을 하기도 하지만, 우체국 심부름이나 사무실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할 때가 대부분이다. 김양은 “처음에는 ‘이걸 왜 나한테 시키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는 할 일도 없다보니 ‘제가 할게요’라고 한다”고 했다. 또 다른 현장실습생 최모(18)양도 “회사가면 주로 하는 일이 책 읽기”라면서 “회사도, 학교도 실습 현장에 필요한 구체적 커리큘럼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교육부와 시민단체 특성화고권리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직업계고 학생 4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취업처에 대한 정보를 잘 알지 못한다’는 응답이 41%로 가장 많았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했다’는 답변도 11%였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보고서에서 “특성화고 졸업 후 취업난으로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비율도 높아졌다”며 “질적으로도 높은 수준으로 취업률을 끌어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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