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이 마무리됐다. 양쪽 경선 모두 네거티브, 인신공격 등으로 볼썽사납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희망적인 시그널이 아예 없진 않았다. 특히 민주당 경선 마지막 날에 나온 3차 국민 선거인단 투표 결과는 누구도 예상 못한 서프라이즈였다. 2차 선거인단 투표에서 58%를 득표한 이재명 후보는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 28% 득표에 그쳤고, 2차 때 33%를 얻은 이낙연 전 대표는 3차에서 62%나 가져갔다. 3차 투표 사흘 전에 대장동 의혹 핵심 인물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구속된 일이 표심에 반영됐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유권자들의 투표혁명은 이렇듯 단 며칠 사이, 어쩌면 단 하루 만에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거판에서 대세는 어느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이다. 유권자들의 반란도 오랜 시간을 들여 조직화돼야 가능한 게 아니라 이심전심이 통하면 순식간에 집단지성으로 변해 곧장 실력 행사에 들어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투표율도 2차 때 59.6%였다가 3차 때 81.3%로 껑충 뛰었는데 이 역시 유권자들이 작심하면 투표 행태 자체가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민주당 골수 지지층이 많이 참여했던 1, 2차 때와 달리 3차 투표 때는 적극적인 여당 지지층은 아니지만 정치에 관심이 있는 중도층 스윙보터가 대거 선거인단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역시 눈여겨볼 부분이다. 중도층이 힘을 합하면 선거 구도를 금세 바꿀 수 있다는 걸 시사하기 때문이다. 지난주 발표된 엠브레인퍼블릭 여론조사에서 ‘내년 대선에 투표할 후보를 정했느냐’는 질문에 50.9%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중도층일 개연성이 높다. 이 중도층이 앞으로 대선판을 어떻게 좌우할지 자못 궁금하다.
여당인 민주당 이 후보와 제1야당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지지율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 지지율 가운데에는 양당의 적대적 공생 관계로 얻어진 어드밴티지가 적지 않게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여당 하는 행태가 괘씸해서 윤 후보를, 제1야당이 하도 한심해서 이 후보를 일단 지지하고 보자는 그런 분풀이성 지지도 많으리라 판단된다. 그렇다고 제3지대 후보들에게 마음을 주기에는 해당 후보들이 너무 미약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지금 중도층의 대체적인 속내가 아닐까 싶다.
찍을 후보를 정하지 못한 중도층이 여전히 많은 만큼 민주당 경선 서프라이즈처럼 남은 4개월 대선 기간에 민심 서프라이즈가 자주 펼쳐지길 기대한다. 이 후보가 대장동 의혹을 깨끗하게 털어내지 못하거나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국민들 반응에 따라 지지율이 요동칠 수도 있다. 윤 후보 역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고발 사주 의혹 수사 결과와 가족 문제, 검찰 재직 시절 일 처리 등과 관련해 지지율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무엇보다 말 실수나 역사 인식 등 대선 후보로서 준비되지 못한 모습이 계속 노출될 경우 지지율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후보 본인이 부족한 걸 ‘선거 기술자’인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채워보려 하겠지만 국민 성에 찰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예상을 깨고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제3지대 후보들이 조금만 더 선전한다면 민심은 거대 양당 후보들을 채찍질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에게 더 마음을 주려 할지 모른다. 셋이 단일화 등으로 힘을 합칠 경우 또 하나의 대선 서프라이즈가 마련될 개연성도 있다. 거대 양당 후보 주변에 있는 이른바 ‘파리떼’ ‘자리 사냥꾼’ ‘하이에나’들이 날뛸 경우 양당에 대한 혐오증이 커지면서 제3지대 후보들의 반사이익은 더더욱 커질 게다.
후보의 매력을 보고 표를 던지는 게 정상적인 선거이지만 지금은 후보의 흠결을 보고 덜 나쁜 사람을 골라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한테 투표혁명 찬스가 남아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처럼 불확실성이 큰 선거에서는 유권자들 하기에 따라 나라의 미래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여당과 제1야당 후보가 정해졌다고 유권자들까지 ‘강요된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 거대 양당 후보들이 남은 대선 기간마저 국민을 상대로 매력 대결을 펼치지 않는다면 유권자들은 언제든 반란을 꾀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