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지금 기후와 에너지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화석연료 사용을 멈춰야 하는데, 최대 에너지원을 포기할 경우 대체재가 마땅치 않다.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원이 충분히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후변화 시계는 점점 빨라져 화석연료 폐기를 더 늦출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난항을 겪는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 사이의 간극에 고민하는 많은 나라 가운데 프랑스와 영국이 먼저 선택을 했다. 원자력발전을 축소하던 두 나라는 다시 원전 확충에 뛰어들었다. 원전을 징검다리 삼아 그 간극을 넘어서겠다는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대국민담화에서 신규 원전 건설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우선 여섯 기를 새로 지을 거라고 한다. 취임 초에 원전 비중을 75%에서 50%로 낮추겠다고 로드맵까지 제시했던 자신의 약속을 스스로 뒤집었다. 영국도 이날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 개발에 33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30년까지 폐쇄하려던 낡은 원전들을 SMR 발전소로 대체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두 나라 모두 탈원전 기조에서 유턴하는 이유로 기후 문제를 들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탄소중립 계획을 실현하려면 과도기 에너지원으로 원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영국 산업장관은 SMR 발전소를 “저탄소 에너지를 도입하고 자립도를 높일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표현했다.
국내에서도 같은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원전 없이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탄소중립위원회가 원전을 배제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70%까지 높인다는 로드맵을 꺼냈지만, 국내 지형과 기후에선 불가능한 구상이란 것이다.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의 수장들까지 비슷한 목소리를 내놓은 것은 우리도 원전 문제를 다시 논의할 때가 됐음을 말해준다. 정부가 4년 전 탈원전을 기치로 내걸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기후변화라는 또 다른 안전 문제가 다급해졌고, 탄소중립이란 중대한 과제가 변수로 첨부됐다. 마침 미래의 방향을 토론하는 대선 무대도 열렸다. 새로운 시각에서 변화한 여건을 짚어보며 원전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탈원전’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작명에 있었다. 선명하지만 극단적이고 경직된 용어를 택한 탓에 융통성의 폭을 스스로 좁혀 논란을 양산했다. 원전 논의에 뛰어들 대선 후보들이 갖춰야 할 첫째 덕목은 유연함일 것이다.
[사설] 탄소중립 위한 원전 정책 재검토 필요하다
입력 2021-11-12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