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서울시의 대선 전초전

입력 2021-11-12 04:06

내년 대선의 특징 중 하나는 정권교체론이 정권재창출론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이를 의식한 듯 여권 내에선 “이재명이 당선돼도 사실상 정권교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이 높다 보니 정권재창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 나오는 고육책일 것이다. 정권이 교체되든, 정권교체 같은 정권재창출이 이뤄지든 5년 만에 권력 주류가 바뀌는 ‘권력 교체’는 꽤 의미가 있다. 청와대 참모와 국회의원을 거쳤던 한 원로는 “정권교체가 세 번 이뤄지면 선진국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미 이를 이뤘다”며 “앞으로 5년 만에 주류 권력이 교체되기 시작한다면 권력의 자세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삼정부에서 김대중정부로, 노무현정부에서 이명박정부로, 박근혜정부에서 문재인정부로 교체되던 시기에 집권당은 큰 사달이 나지 않는 이상 정권재창출을 당연하게 여겼다. 얼마 전엔 장기집권을 꿈꾸던 여당 대표가 20년 집권론 같은 발언까지 내놓기도 했다. ‘10년은 맡아 놓은 것’이라 여겼던 정권의 오만함을 견제하기 위해선 권력 교체가 자주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요새 부쩍 자주 든다. 여당 내에서도 정권교체 같은 정권재창출 시도가 더욱 활발해졌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잦아진다면 청와대와 국회 관계도 변화무쌍해질 것이다. 총선과 대선이 비슷한 시기에 치러지면 여대야소가, 시차를 두고 엇갈리면 여소야대 국면이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겨우 5년만 지나도 정권이 바뀔 수 있다는 위기감은 야당과의 협상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게 된다. 지금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상황을 그 실험대로 삼아볼 만하다.

2018년 서울시의회는 더불어민주당이 110석 중 102석을 석권했지만 지난 4월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됐다. 11년 만의 서울시 여소야대 국면은 모든 현안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차차기 대선을 꿈꾸는 오 시장은 중앙정부급 정책을 쏟아낸다. 재개발·재건축 시기를 앞당기는 신속통합기획,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인 기본소득과 경쟁하는 안심소득 실험 등이다. 반면 시의회는 서울시의 시민사회단체 협력사업 예산 삭감 및 대대적 감사에 반발하고 있다. 또 서울시가 박원순 전 시장이 주력했던 자치사업을 한꺼번에 원점으로 되돌리고 편법·불법 딱지를 붙이고 있다고 본다. 민주당이 추진했던 반값 아파트를 구현하겠다는 경실련 출신의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후보자를 민주당 시의원이 ‘배신자’라고 비판하며 사퇴를 종용하는 감정싸움도 벌이고 있다. 시의회는 내년도 예산안을 칼질할 것이고, 서울시는 협상보다는 준예산 편성에 대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어차피 내년 대선 결과에 따라 석 달 후 지방선거에서 오 시장이 쫓겨나거나 민주당 시의회가 물갈이될 것이라는 각자의 기대감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마냥 대선만 바라보기엔 남은 넉 달이 너무 중요하다. 지난 2년간 사회적 약자들을 절벽으로 내몰았던 코로나19 사태의 방역체계가 ‘위드 코로나’로 전환됐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재기, 청년층의 취업난 해소와 자산시장 재진입, 대면서비스업 여성 종사자의 재취업 등을 위한 취약계층 지원책은 속도가 생명이다. 경제구조 재편, 자산·교육 양극화 해소 등 코로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과제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러니 서울시와 의회가 현안마다 옥석 가리기에 충실해줬으면 한다. 불법행위 같은 잘못은 도려내는 게 맞다. 정치적 이슈는 타협하고, 옳은 정책엔 힘을 합해줬으면 한다. 어렵게 일상회복 단계에 들어선 국민을 정치적 볼모로 삼는 건 정말이지 파렴치한 일이다.eyes@kmib.co.kr

강준구 사회2부 차장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