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다. 다행히 무릎뼈는 무사했지만 타박상 후유증으로 열흘 넘게 병원에 다니고 있다. 이 시절에 가게 될까봐 두려워했던 병원에서 질병과 아픈 사람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하게 됐다.
몸을 가진 생명체는 질병을 피해갈 수 없다. 병의 경중과 투병 기간의 차이가 있지만 앓는 동안 누구나 곤혹스러운 시선을 의식한다. 질병 원인을 예단하고 추궁하는 시선이다. 병을 만든 사람의 습관이나 생활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말도 흔하다. 조심하지 그랬어, 어쩌다가 그 지경까지 됐냐, 몸 관리를 잘했어야지라는 말투에는 비난이 묻어 있다. 과도한 연민과 위로의 눈길에는 아픔을 사소한 것으로 표현해야 하는 부담까지 안는다.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은 꽤 깊다.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평범한 소망은 건강 제일주의를 만들었고 아픈 사람에 대한 빗나간 간섭과 배려 없는 태도로 변질되기도 한다.
‘질병과 함께 춤을’이라는 모임이 있다. 잘 아플 수 있는 질병권이 보장되고 서로 다른 몸들이 존중되는 세상을 이루어가는 사회단체 ‘다른몸들’이 만들었다.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목소리로 경험을 설명한다. 참여자들은 아플 때 필요한 돌봄, 의료, 노동 등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지만 무엇보다 질병 경험을 직접 해석하고 설명하는 언어를 찾아낸다. 그 언어로 질병 서사 쓰기의 영역에 발을 딛게 되는 것이다.
‘질병을 겪는다는 것은 병명 하나가 삶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익숙하던 일상이 낯설어지던 일이다’라는 진실은 참여자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문득 평범한 안부 인사가 불편하고, 아픈 것이 가족과 이 사회에 죄를 짓는 것만 같은 묘한 감정…. 이 감정을 언어로 표현해 건강과 질병을 선악으로 규정하고 경계 짓지 않으며 삶의 문제로 치환한다.
모임 이름 그대로 책명이 된 ‘질병과 함께 춤을’을 읽었다. 책에는 난소낭종, 조현병, 척수성근위축증, 류머티즘을 앓는 네 사람의 고백이 실려 있다. “쓰기와 살기,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을 사랑했고, 그들의 삶을 드러내고 싶었고, 속잎처럼 여린 이야기들을 쓰고 싶었다”고 조현병을 앓는 박목우씨는 자신의 질병을 기록하면서 존재감을 확인했다. 써야 살 수 있다는 절박함이 그대로 드러난 글이었다.
‘질병과 함께 춤을’ 참여자들은 아픈 몸을 차별하는 사회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탐색한다. 아픈 몸들도 배제당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찾는 데 있어 한 가지 전제가 있다. 질병을 아픈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로서 정의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라는 사회학자 존 맥나이트의 말은 참여자들에게 용기를 안기는 경구다. 질병의 언어들이 기록되면 우리 사회가 사람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쉽게 규정하는 태도도 조금씩 바뀌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용기다. 참여자들은 서로의 말을 경청한다. 죽음과 고통에 대한 생각을 나누겠다는 의지로 발언자의 한마디 한마디를 이해하려 하고 소외와 통증을 공유한다. 타인이라는 감각을 넘어 살과 피로 이뤄진 인간으로서 동질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모임명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책을 엮은 조한진희씨는 말한다. “건강을 인체의 각 구성 요소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라고 할 때, 그 균형과 조화를 잡기 위해 흔들리는 상태가 질병이다. 질병과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질병과 리듬을 탄다는 것인데, 이는 건강 중심 세계가 규정한 질서에 맞추는 게 아니라, 아픈 몸에 맞는 질서인 질병권에 맞춰 삶을 재구성해보는 일이다.”
아픈 몸들이 내는 목소리는 우리 사회의 건강에 대한 강박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아픈 몸이 기준이 되면 돌봄을 주고받는 게 인간의 덕목, 권리, 의무, 기쁨인 사회가 될 것이다. 아픔과 스텝을 맞춰 삶을 이어가는 것, 인간적인 삶은 이렇게 춤추듯 영위된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