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자마가 찢어졌다. 한 번 찢어져서 수선을 맡겼는데 그 옆이 또 찢어진 것이다. 오른팔 겨드랑이 부분인데 왜 거기가 유독 찢어지는 것인지 궁금하다. 자면서 내 오른팔의 움직임을 몸통 쪽 옷감이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나 보다. 수선집 아저씨가 옷을 보더니 심하게 찢어져서 뭘 덧대야 할 텐데 원래 옷감과 비슷한 천이 없다고 난처해 했다. 나는 수선한 티가 역력하게 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하면서 아저씨를 안심시켰다. “그냥 잘 때 입는 옷이에요. 생판 다른 천이어도 저는 좋아요.” 그래도 아저씨는 톤이 맞지 않는 천으로 덧대는 게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계속 걱정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일단 내일 와보라 했다.
옷을 맡기고 나오자마자 나는 깜빡하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고급 바느질 기술을 배워 내가 직접 이 찢어진 것을 (티 엄청나게) 꿰매 봐야지, 하고 다짐을 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저씨가 대체 어떤 천으로 덧대어줄지 기대하는 일도 그만큼 흥미진진한 일이어서 그냥 맡긴 것을 도로 무르지 않고 가던 길을 갔다. 가던 길에서 내친김에 산책을 하려고 그간 가보지 않았던 길로 들어섰다. 처음 보는 오르막길을 성큼성큼 오르면서 바느질을 직접 하는 것도, 다른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것도,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좋은 나의 입장에 대해 생각했다.
언제부터였는지 나는 늘 이런 식으로 굴게 됐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예전엔 반드시 내가 해야만 했거나,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다른 사람이 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속상하고 분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나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는 인간이 돼버렸다. 이것은 비로소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이 세계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디어 깨달은 것만 같다.
요조 가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