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그 문제를 다루는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정치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혐오하는 정치, 그게 아니라면 인간으로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왜 그런지 얘기를 시작해볼까요.’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신문 칼럼으로 유명한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정치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새 책을 썼다.
“태어난 이상 살아가야 하고, 살아가는 한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관계를 맺는 이상 정치체에 속하지 않을 수 없고, 정치체에 속하는 한 누군가에게 다스려지지 않을 수 없다. 피치자(被治者)는 늘 다수이고, 치자(治者)는 늘 소수이기 때문에.”
그는 “천사가 아닌 존재들이 어떻게든 견딜 만한 공존의 질서를 모색하고 유지하는 일이 바로 정치”라고 말한다. 정치나 권력을 혐오하는 것은 삶을 혐오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더러운 세속의 정치를 외면하고 싶겠지만, 복수의 인간이 사는 곳에서 정치는 불가피하다. 정치를 외면하는 것은 세속의 삶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지극히 교과서적인 얘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혐오나 냉소가 마치 지성적인 태도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찍을 사람이 없어서 내년 대선에 기권하겠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시절에 정치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는 이 책의 의미는 각별하다.
김 교수는 “정치가 있어야 삶이 완전해진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는 너무나 소란스럽고 자주 실망스러운 게 사실이다. 세상을 개선하는 정치의 효능을 경험하기 어렵고, 그 무성한 목소리들이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처럼 들린다. 정치에 관심을 끊고 개인적 삶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수시로 찾아든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향해 “고독을 즐기고, 식고 마른 심신으로 해탈의 방법이나 찾으며, 나만 구제하면 그만이지 남이 무슨 상관이랴라고 말하는 것. 그건 자기 개인에게야 좋겠지만 위대한 것은 아니다”라고 한 고려시대 문인 권적의 글을 읽어준다.
김 교수의 글은 쾌감과 자극을 제공한다. 유머러스하고 감각적인 문장으로 참신하고 때론 대담한 사유를 펼쳐 보인다. 칼럼들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등 에세이집에서 보여준 김 교수의 문체는 이번 책에서도 빛난다.
그는 이 책에서 정치를 말하는 낯선 방식을 보여준다. 그의 정치 이야기는 저널리즘이나 정치평론 등을 통해 익숙하게 유통되는 내러티브와 사뭇 다르다. 중국 정치사상사를 연구한 이력에 영화, 드라마, 그림 등을 다양하게 끌어와 정치의 인문적이고 예술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정치에 대한 참여가 냉소보다 더 낫다고 설득한다.
투표에 대한 글도 있다. ‘변신’이라는 키워드를 들고 와 사적 존재가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으로 투표를 묘사한다.
“국가권력을 창줄하고자 투표장에 간 순간, 흩어져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던 사적 존재들은 어엿한 정치적 존재로 변신한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괴롭기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정치를 옹호하는 저자 역시 그리 정치적인 인간은 못 되는 모양이다. 정치 공동체에 속하고 싶지 않고 투표장에 가기 싫고 열광하는 정치인도 없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특정 정치인에 대해 열광하는 마음은 식고 그에 대해 생각해보려는 마음이 뜨거워지기를. 천천히 침구를 정리하고 투표장으로 걸어가기를” 바라며 책을 썼다고 밝혔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