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기업, 연구기관 등으로부터 상용화 가능성이 있는 특허를 사들이는 A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특허를 활용해 물건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특허를 판매하거나, 특허 침해소송을 제기할 만한 ‘먹잇감 기업’을 물색한다. 기술전문가, 변호사, 회계사 등 A기업 구성원들은 표적 기업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뒤 막대한 금액의 특허소송을 제기한다. A기업처럼 제품 생산을 하지 않으면서, 특허소송으로 수익을 거두는 회사를 특허관리전문회사(NPE), 이른바 ‘특허괴물’이라고 부른다.
한국 기업들이 특허괴물과의 싸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광범위한 분야에서 사업을 펼치는 삼성과 LG 등을 대상으로 하는 특허소송이 줄을 잇는다. 삼성은 미국에서 최근 5년간 413건의 소송에 시달렸다. 이 가운데 76.3%(315건)를 특허괴물이 제소했다. 미국에서만 매주 1건꼴로 특허침해 관련 소송에 걸린 셈이다.
10일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특허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미국에서 한국 기업 20곳의 피소건수는 707건에 달한다. 이 중 원고가 특허괴물인 소송은 530건(75%)이나 된다. 삼성에 이어 LG도 ‘NPE 제소’만 168건에 이른다. 두 그룹의 NPE 피소건수는 전체의 90%를 넘는다. 특허정보 분석업체 유니파이드페이턴츠가 올해 3분기까지 미국 내 지방법원급에서 발생한 특허침해 소송을 전수조사했더니, 삼성전자가 58건으로 가장 많았다. 2위인 애플(29건)의 두배다.
여기에다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특허괴물의 소송은 2019년 이후 급증세다. 한국지식재산보호원에 따르면 미국에서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특허소송 건수는 2019년 208건에서 지난해 187건으로 10.1% 감소했다. 대신 NPE 소송은 같은 기간 90건에서 111건으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 특허괴물과의 소송은 84건으로 지난해 연간 소송 건수를 넘을 분위기다. 삼성은 주요 표적이다. NPE 소송의 상당수가 스마트폰, 반도체 등 전자·전기 분야이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한국 대기업이 NPE로부터 제소당한 80건 중 41건이 전자·전기 분야이고, 그중 22건이 반도체 기술이다. LG전자는 올해 스마트폰 사업을 철수하면서 관련 소송도 줄어들 전망이다.
특허괴물의 소송을 방지할 방법은 사실상 많지 않다. 서영호 아트만 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미국변호사)는 “제조기업 간 소송의 경우 제품을 비교해 다퉈보거나 합의를 거쳐 특허 공유 방식으로 원만하게 결론 지을 수 있는데, NPE는 그렇지 않다. 작정을 하고 소송을 걸기 때문에 로열티나 합의금 지급으로 마무리 짓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발생한 특허분쟁 1005건 중 종결된 809건에서 72%(585건)는 소 취하로 끝났다.
전문가들은 선제적 대응을 강조한다. 서 변리사는 “특허괴물이 좋은 특허를 사들이기 전에 미리 사들이고 포트폴리오를 충실하게 만드는 적극적 전략이 필요하다. 국내 기업들이 영미권 기업보다 지식재산권 인식이 낮았던 점이 특허괴물이 활개칠 공간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관련 조직을 만들고, 전문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활발하게 특허도 매입한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보유 특허 20만건을 넘어섰다. 특허 출원은 물론 글로벌 기업들과 ‘크로스 라이선스’(특허 교환)를 맺으며 보호망도 넓힌다. 다만 정부 지원은 아쉽다. 백상희 테헤란 특허법인 대표변리사는 “대기업은 그나마 역량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승소 가능성이 크더라도 시간·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로열티를 내고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특허소송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