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난 5월에도 열흘간 유혈 충돌이 벌어져 300명 가까운 팔레스타인인과 12명의 이스라엘인이 사망했다. 우리는 주로 미국이나 유럽쪽 시각에 의존해 이 분쟁을 이해해왔다. 팔레스타인의 시각을 접하긴 어려웠다.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은 팔레스타인의 시각에서 이 분쟁의 기원과 역사를 조명한다. 저자인 라시드 할리디는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인 역사학자로 뉴욕 컬럼비아대 교수다.
누구의 눈으로 보는가에 따라 하나의 사건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이야말로 그렇다. 이-팔 분쟁을 이스라엘의 식민주의에 맞선 팔레스타인 민족의 저항운동으로 고쳐 쓴다.
이-팔 분쟁은 흔히 같은 땅에 대해 각자 권리가 있는 두 민족 사이에 벌어진 충돌로 여겨졌다. 수천년 전 선조의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유대인과 그 땅을 수백년간 점유해온 팔레스타인인, 모두에게 일정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아랍세계에서 고립된 약자로 보는 시각도 통용돼왔다. 이스라엘은 평화를 바라는데 팔레스타인이 계속 도발한다는 묘사에도 익숙하다. 팔레스타인의 저항에는 테러리즘이라는 붉은 딱지가 붙어있다.
이 책은 이-팔 분쟁을 팔레스타인인을 쫓아내고 그들의 고국을 유대인의 고국으로 바꾸기 위해 벌어지는 전쟁으로 묘사한다. 분쟁의 기원을 1948년 이스라엘 건국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 19세기 말 시온주의 운동에서 찾는다. 유럽의 극악한 반유대주의에 대응해 등장한 시온주의는 유대인 민족국가 건설 운동으로 그동안 민족주의 기획으로 해석돼왔으나 저자는 “식민주의 기획”으로 새롭게 규정한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인디언을 학살하고 미국을 세운 것처럼, 영국 미국 등 열강을 등에 업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몰아낸 뒤 밀고 들어온 게 본질이라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세계적 석학이자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인 에드워드 사이드는 시온주의가 성공을 거둔 이유 중 하나로 “관념과 재현, 언어와 이미지가 문제가 되는 국제 세계에서 팔레스타인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에서 승리했다”는 점을 들었다. 홀로코스트 참사가 폭로된 것은 시온주의가 추구하는 유대 국가 창설의 타당성을 확산시켰고 반대론자들을 침묵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저자는 시온주의를 핍박당하는 유대인의 민족주의로, 이-팔 분쟁을 땅에 대한 권리를 가진 두 민족의 충돌로 포장해온 것은 “한 세기에 걸친 기만”이라고 비판한다.
책은 1917년 벨푸어 선언부터 48년 이스라엘 건국, 오늘날의 가자지구 공격까지 여섯 번의 결정적 시기를 조명하면서 이-팔 분쟁의 식민주의적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시온주의가 거둔 첫 승리는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제임스 벨푸어가 작성한 선언이었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본거지를 수립하는 것을 찬성하고”라는 문구가 담겼다.
벨푸어 선언 이후 영국의 지지와 보호 속에서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내 점유지와 인구를 빠르게 늘렸다. 특히 독일에서 히틀러가 부상하자 독일의 많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몰려왔다. 1939년에 이르면 유대인 인구가 팔레스타인 전체의 30%를 넘어섰다.
47년 11월 유엔 총회에서는 팔레스타인을 넓은 유대 국가와 좁은 아랍 국가로 분할한다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48년 5월 이스라엘은 건국을 선포했다. 이렇게 팔레스타인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대부분 지역이 이스라엘에 흡수됐고, 나머지는 요르단과 이집트의 통제 아래로 들어갔다.
살아온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민족은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으로 흩어져야 했고,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후 오랫동안 중동 지역의 안정을 뒤흔드는 요인이 됐다. 중동 분쟁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대결이라는 형태를 띠지만, 그 속을 보면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이 이어지면서 아랍 국가들이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과 대결로 이끌려 들어간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은 팔레스타인 민족의 삶과 고통, 저항을 상세하게 기술한다. 팔레스타인 민족은 세계 어떤 강대국의 후원도 얻지 못한 채, 이웃 아랍 국가들의 외면 속에, 이스라엘 군대의 압도적 무력을 견디며 100년 넘게 자기 땅을 되찾기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저자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과 끈질긴 존재, 이스라엘의 야심에 대한 도전은 현시대에 가장 인상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가자 지구는 1948년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이 벌이는 저항의 용광로다. 이스라엘군은 가자를 겨냥해 수십 차례 공격을 퍼부었다. 특히 팔레스타인 저항조직 하마스가 가자 지구를 장악하자 이스라엘군은 2008년, 2012년, 2014년 세 차례 대규모 폭격을 가했다.
“2014년 7월과 8월의 51일에 걸쳐 이스라엘 공군은 6000회가 넘는 공습을 벌였고, 육군과 해군은 5만발 정도의 대포와 전차포를 쏟아부었다. 이스라엘군은 모두 합쳐 총 2만1000톤으로 추정되는 고폭탄을 사용했다.”
책은 이스라엘의 폭격이 방어적 성격이 아님을 보여준다. 팔레스타인의 완전한 이스라엘화, 저항운동의 무력화가 목표다. 이스라엘 군대는 팔레스타인인의 작은 소요나 폭력에도 무자비한 폭력으로 응징했다. 비례 원칙을 넘어 치명적인 무기로 민간인들을 무차별 공격했다. 이런 장면이 보도되면서 이스라엘에 우호적이던 서구인들의 시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유서 깊은 명문 가문 출신인 저자는 가족과 친척이 남긴 기록과 발언, 인터뷰 등을 인용하며 팔레스타인 민중사와 저항사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예루살렘 시장을 지낸 큰아버지, 19년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국에서 일한 아버지 등 그의 가문은 역사적 현장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이-팔 분쟁은 어떻게 전개될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족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정복할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 민족은 결국 이스라엘을 몰아낼 수 있을까, 아니면 두 민족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찾아낼까. 저자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완전히 추방한다는 터무니없는 관념을 제외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해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