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크리에이터

입력 2021-11-13 04:07

지난 주말 장례식장 한쪽 식탁에 둘러앉은 지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유독 메타버스를 놓고 격론이 오갔다. “메타버스 관련주에 투자해 재미를 봤다”는 이의 너스레가 난상토론을 몰고 왔다. “얼마를 벌었는가”라는 질문은 잠시 뒤 “메타버스란 무엇인가”로 바뀌었다. 거기 앉은 모두가 메타버스에 친숙하지 않은 40대였다. 누구도 결론 낼 수 없는 논제에선 질문만 쌓여간다. “그래서 메타버스가 뭡니까? 가상현실에서 캐릭터로 살아가는 세계라면 리니지도 메타버스잖아요.” 어디 리니지뿐일까. 15년 전 전국을 ‘일촌’으로 묶은 싸이월드, 일본 닌텐도사 모바일게임 포켓몬고도 메타버스의 일종으로 설명된다.

2000년 전후 ‘닷컴 혁명’의 수혜를 누려온 세대도 중년으로 자라니 자신이 그토록 밀어냈던 기성세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지론을 늘어놓는다. “보고서엔 구색이 필요합니다. 사업계획서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다 보니 너도나도 메타버스를 끼워 넣은 거예요.” 이 말에선 금융기관, 게임업체, 체육단체가 시류를 좇아 숱하게 쏟아낸 메타버스 플랫폼들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토론이 잠잠해질 때쯤 메타버스 투자에 성공했다는 이에게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리니지, 싸이월드가 바로 메타버스예요.” 그는 이미 5년 넘게 메타버스를 관찰해 왔다고 했다.

추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혼합한 조어 메타버스는 이미 2000년대에 등장한 표현이다. 메타버스를 충족하는 요건은 세계관(Canon) 연결(Connectivity) 지속성(Continuity) 창작자(Creator) 통화(Currency)의 5가지. 그중 과거와 현재의 메타버스를 구분하는 요건은 창작자와 통화다.

과거의 메타버스에선 플랫폼을 제공하는 게임 개발사나 포털 사이트만이 창작자의 지위를 가졌다. 이용자는 게임머니나 아이템 같은 플랫폼 안의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소비했다. 현재의 메타버스에선 이용자도 창작자다. 이용자는 메타버스 플랫폼 안에서 콘텐츠를 제작해 판매한다. 독립 게임 스튜디오 업리프트게임스는 미국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 안에서 가상의 반려동물을 입양해 양육하는 시뮬레이션 콘텐츠 ‘입양하세요(Adopt Me)’를 개발해 연간 5000만 달러(약 58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리니지에서 한때 수억원을 호가했던 고가의 아이템 ‘집행자의 검’이 국내 게임 개발사 엔씨소프트 콘텐츠의 일부라는 점을 감안하면, 로블록스의 메타버스는 기존의 게임 플랫폼과 차별화된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재학생 5명은 지난 1월 1일 닌텐도 DS 콘솔을 온라인으로 연결한 커뮤니케이션게임 ‘모여 봐요, 동물의 숲’에서 저마다 다르게 꾸민 아바타를 통해 새해 모임을 가졌다. 10대에게 메타버스는 이제 삶의 일부와 같은 공간이다. 닌텐도 DS 화면 캡처

메타버스에서 통화는 여러 형태로 유통된다. 최근에는 암호화폐(가상화폐)를 메타버스에 장착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블록체인으로 콘텐츠에 소유권을 부여하는 NFT(대체 불가 토큰)가 대표적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칼럼이 지난 3월 NFT 경매에서 56만2000달러(약 6억6000만원)에 낙찰된 일화가 유명하다.

현재의 메타버스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창작자다. 플랫폼 제공자 독점에서 이용자 참여로 확대된 콘텐츠 창작 권한이 메타버스의 성장 가능성을 말해준다. 그동안 디지털 플랫폼에서 쉽게 구했고 복제도 가능해 ‘공짜’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던 콘텐츠는 이제 메타버스에서 ‘구독 경제’라는 이름의 수익원으로 재탄생했다.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모기업인 하이브, 사명을 메타 플랫폼스로 바꾼 페이스북, 의류·신발을 제조하는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메타버스 시장에 뛰어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메타버스 시장의 지속적 팽창을 놓고선 이견이 존재한다. 코로나19로부터 일상을 회복하는 속도에 따라 가상세계를 이탈하는 움직임도 가속될 수 있다. 가상화폐의 큰 변동성에선 메타버스의 ‘구독 경제’를 무너뜨릴 위험이 도사린다. 하지만 시장은 언제나 흥망성쇠를 거쳐 옥석을 가려냈다. 지금의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은 2000년 전후 정보통신기술 산업이 일제히 몰락한 ‘닷컴 버블’을 버텨낸 생존자들이다.

10대는 이미 메타버스를 삶의 일부로 소비하고 있다. 네이버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 아바타로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계정은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다. 제페토의 누적 가입자 수는 2억4000만명이다. 그들이 어른의 눈에만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옛날 게임들을 열거하며 메타버스를 설명하는 시기가 지나간 것만은 분명하다.


김철오 온라인뉴스부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