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금융위는 왜 법학자를 경제전문가로 우길까

입력 2021-11-10 04:05 수정 2021-12-08 21:18

170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관리하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 민간위원에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한 인사가 내정됐다는 지적(11월9일자 16면 보도)에 금융위원회는 10일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성재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명망 있는 법학 전문가다. 그는 국제법·인권법 등 분야에서 수많은 논문을 냈다. 문제는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이 규정하는 국회 정무위원장 추천 몫은 ‘경제전문가’로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는 이 법의 경제전문가 요건에 적힌 ‘상법 또는 그 밖에 경제 분야를 전공’이라는 문구를 들면서 성 교수가 이에 해당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 밖의 경제 분야’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수십년간 쓴 논문 목록만 봐도 그가 경제가 아닌 법 전문가임을 알 수 있다.

금융위는 또 성 교수가 한국국제경제법학회 회장·규제개혁위원회 경제분과위원·신한금융지주 사외이사 등을 역임했기에 전문성을 갖춘 것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국제경제 중 통상법을 연구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통상 전문성이 공적자금 운영과 관계가 있을까. 성 교수의 규제개혁위원회와 신한금융 사외이사 활동도 주로 법학 전문성을 토대로 이뤄졌다.

역설적으로 성 교수는 같은 법의 다른 규정에 비춰보면 공자위 민간위원 자격이 충분하다. 민간위원 중에는 법원행정처장이 추천토록 돼 있는 ‘법률전문가’ 자리가 있다. 특별법은 법률전문가를 ‘법학을 전공하고 대학이나 공인된 연구기관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성 교수와 딱 들어맞는다. 마침 법원행정처장 추천 민간위원도 오는 11일 임기가 만료된다.

금융위는 “국회 등 각 추천 주체의 의견을 존중했다”고 하지만 민간위원을 최종 결정하고 위촉하는 것은 고승범 금융위원장의 권한이다. 고 위원장이 왜 특별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논란을 일으키는지 모를 일이다. 금융위의 궤변을 듣고 있자니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김지훈 경제부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