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나무는 이웃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자라는 나무보다 탄소를 4배 빠르게 흡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현실적인 얘기지만 말레이시아 정부가 제출한 자료만 보면 이는 사실이다. 5년 전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25위를 기록했던 말레이시아의 최근 자료는 배출량이 무려 73% 감소했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 각국이 유엔에 제출한 온실가스 배출 통계가 상당수 축소된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에 현재 논의되고 있는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치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문가로 구성된 검증팀이 유엔에 제출된 196개국의 온실가스 배출 자료를 자체 분석한 결과 상당수 국가가 객관성이 떨어지거나 자의적 기준을 적용한 자료를 사용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축소 보고했다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6)가 합의안 마련을 위해 근거로 삼는 자료들에 오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류를 바로잡으면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은 최대 133억t이 늘어 기존 측정치보다 23%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증가분은 세계 1위 탄소배출국인 중국의 배출량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최소치도 85억t으로 2위 배출국인 미국의 연간 배출량보다 많다.
각국이 육지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추정하면서 발생한 오류가 전체 오차의 최소 59% 이상을 차지했다. 많은 국가가 산림과 흙이 탄소를 빨아들인다며 흡수량을 자체적으로 계산해 탄소배출량에서 상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해 중국과 러시아 등 주요 탄소배출국이 이런 방식으로 5억t 이상을 상계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메탄 역시 배출량이 실제보다 축소된 대표적 항목이다. 위성사진으로 온실가스 배출치를 측정하면 러시아의 메탄 배출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유엔에 제출된 메탄 배출량은 과학자들의 추정치보다 수백t이 적다.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주요 산유국도 배출량을 실제보다 축소해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WP는 전했다.
유엔의 배출량 측정 기준 자체가 과소 추정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엔은 현재 대기 분석이나 위성사진에 따른 자료를 요구하는 대신 각국의 과학자들이 항목별 배출치를 계측하도록 한다. 각국이 손쉽게 숫자를 조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선진국은 탄소배출량을 매년 발표하지만 상당수 개발도상국은 별도 제출 의무가 없다. 196개국 가운데 대부분 선진국을 포함한 45개국만이 2019년 기준 배출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로드맵 설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프랑스 기후환경과학연구소 필리프 시애 박사는 “보고와 현실에 큰 괴리가 생기면서 모든 것이 어느 정도 환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롭 잭슨 미 스탠퍼드대 교수도 “우리가 현재 온실가스의 정확한 배출량을 알 수 없다면 우리가 감축 목표를 충분히 설정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