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과세 피한 매도·해외이전 안 통해… 증빙자료 확보해야

입력 2021-11-13 04:05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대 개인투자자 A씨는 암호화폐(가상자산) 과세를 앞두고 보유 자산을 어떻게 증빙할지 고민하고 있다. A씨는 500만원가량을 암호화폐에 투자해 7억원까지 불렸다. 국내외 10여곳의 거래소에서 코인을 사고팔았는데 매매 횟수만 13만건이 넘는다. 암호화폐 투자로 번 소득을 투자자가 직접 증명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그는 엑셀로 거래 내역을 정리하고 있다. A씨는 증빙을 못해 억울하게 세금을 더 내진 않을까 걱정이 크다.

암호화폐 과세가 약 50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분주하게 대응책을 찾고 있다. 세법 개정안에 따라 가상자산을 양도·대여해 얻은 소득은 내년 1월 1일부터 ‘기타소득’으로 분류, 과세 대상이 된다. 연간 매매 차익에서 250만원을 공제한 후 22% 세율(지방세 포함)이 적용된다.

납세 의무를 지게 된 투자자들은 관련 커뮤니티에 문의 글을 올리며 도움을 구하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서 근무했던 권인욱 세무사, 국민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원에서 블록체인을 전공하는 우동호 세무사 등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주의해야 할 점을 알아봤다.

과세 앞두고 코인 빼야 할까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최대 고민은 보유한 코인을 과세 전에 팔지 말지다. 세금이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시장 경색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저렴하게 코인을 매입해 높은 수익률을 기록 중인 이들은 차익에 비례한 세금폭탄을 맞을까 두려워한다. 연말에 미리 매도해 거래 내역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취득가액 개념을 오해해서 나온 이야기다. 기획재정부는 가상자산 과세에 ‘의제 취득가액’을 적용했다. ‘2022년 1월 1일 0시 기준 가격’과 ‘실제 취득한 가격’을 비교해 더 큰 값을 과세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초 비트코인을 2000만원에 샀는데 다음 해 1월 1일 가격이 7000만원이라면, 비트코인을 7000만원에 취득했다고 보고 이후의 차익만 과세 대상이 된다.

코인 투자로 막대한 돈을 번 ‘고래’(큰손)들은 세금을 위험 요소로 여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동호 세무사는 “암호화폐로 수십억~수백억원을 번 투자자 중 세금 때문에 시장이 무너질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기적으로 오를 것으로 보고 계속 투자한다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소액으로 단기 투자하는 개인의 투심이 나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금을 피해 해외거래소로 가상자산을 빼돌리려는 시도에 대해 현명하지 않다고 주의했다. 권인욱 세무사는 “나중에 원화로 바꿔쓰려면 결국 국내 거래소로 들어와야 하는데 그 시점에 과세 당국이 징수할 수 있다”며 “어떤 눈속임으로도 세금을 피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증빙 책임은 투자자의 몫

정부는 가상자산 소득을 증명해야 할 최종 책임이 투자자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기재부는 세법 시행령 개정 브리핑에서 “투자소득이 연간 250만원을 넘는 것으로 계산한 투자자는 스스로 신고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A씨처럼 여러 거래소에서 매매한 경우 투자내역을 모두 증빙하기는 어렵다. 보안이나 증여 등 이유로 암호화폐를 가족 명의로 옮긴 투자자도 적지 않다. 이 경우 상속세나 증여세가 문제가 돼 증빙 방법이 복잡해진다.

국내외 거래소를 아우르는 과세 시스템은 아직 구축되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다른 거래소에서 유입된 코인이 매도된 경우 최초 취득가액을 알 방법이 없다. 기재부는 지난달 20일 “고객의 동의를 얻어 취득원가 정보를 타 거래소에 제공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했다.

세무사들은 최대한 거래 증빙 자료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 세무사는 “암호화폐 매매 내역을 거래소에서 다운로드해야 한다. (매매 내역이 없다면) 거래를 증명할 수 있는 메일이나 메시지를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코인 세금’ 내면 건보료 더 낸다?

기타소득으로 분류된 가상자산은 분리과세 대상이다. 종합소득에 합산되지 않아 전체 세율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건강보험료가 늘어날 수는 있다. 건보료 산정 대상에 기타소득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다만 건강보험공단은 로또 당첨금 같은 일시적 기타소득은 건보료 산정 시 제외하고 있다. 결국 공단이 가상자산의 성격을 어떻게 볼지가 관건이다. 건보공단 측은 “보건복지부에서 세법을 검토 중”이라며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우 세무사는 “정부가 가상자산을 화폐로 인정하지 않으려다 보니 금융자산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250만원 공제 같은 것은 해외 주식 과세 체계에서 준용해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암호화폐 과세가 유예될 가능성도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과세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강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과세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았고 투자자 보호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표심’만 좇아 과세 원칙을 허문다면 정책 신뢰를 해친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