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900만명의 동유럽 국가 루마니아는 국민 대다수가 그리스정교 신앙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때문에 루마니아가 코로나19 사망률 세계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국립발스의료연구원에 따르면 루마니아의 하루 평균 코로나19 사망자는 600명이다. 이는 미국보다 7배나 높은 사망률이며 같은 유럽 국가인 독일보다 무려 17배나 높은 수치다.
루마니아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눈에 띄게 낮은 백신 접종률 때문이다. 2차 백신까지 맞은 루마니아인은 전체 인구의 44%에 불과하다. 유럽연합(EU) 소속 국가의 평균(70% 이상)에 훨씬 못 미치는 접종률이다. 백신 접종률이 낮으니 신규 확진자도 계속 늘어나는 데다 확진자 가운데 중증환자 비율이 증가하고 사망자도 속출하는 것이다.
루마니아 정부가 아무리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리려 해도 그리스정교회와 영향력 있는 일부 사제의 반(反)백신 신념 설파로 인해 백신 접종률은 거의 6개월째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일요일 예배에서 설교를 통해 “백신 접종은 필요 없다”고 주창한 일부 사제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인터넷과 모바일, 이에 동조하는 극우 정치세력 등에 의해 계속 확대 재생산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인접국인 불가리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체 국민의 백신 접종률이 29%로 EU에서 가장 낮아 확진자 사망률도 엄청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NYT는 병원마다 새로 이송되는 중증환자로 넘쳐나면서 의료붕괴 직전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전했다.
가장 기이한 현상이 빚어지는 곳은 발트해 국가인 라트비아다.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이 나라 국민의 평균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지 않아 당국이 역학조사를 해봤더니 러시아정교를 믿는 라트비아 내 러시아인의 접종률만 크게 떨어져 있는 사실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러시아정교는 그리스정교가 러시아에 정착하며 현지화된 형태로 범그리스정교로 분류된다.
NYT는 “매우 보수적이며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는 그리스정교회 사제들의 반백신 신념이 동유럽을 새로운 코로나19의 진앙지로 만들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유독 동유럽에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과거 공산주의 독재시절 탄압받았던 정교회 신자들 사이에 정부 자체를 불신하는 태도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