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쫓아낸 오르테가, 독재로 4연임 성공

입력 2021-11-10 04:03
중미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실시된 대선에서 투표를 마친 뒤 엄지를 치켜 세우고 있다. 그는 4연임이자 통산 5선 고지에 올랐다. AFP연합뉴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은 중남미의 슬픈 역사에 관한 웅변이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에서부터 이어져 온 한 가문이 결국 괴물로 둔갑한다는 줄거리 안에 백인들의 식민지배와 원주민 말살, 혼혈과 혼돈,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횡행한 독재와 포퓰리즘 등을 모두 담고 있다.

멕시코와 콜롬비아 사이를 잇는 니카라과의 역사는 이 소설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이어진 식민지배, 20세기 전체를 지배했던 소모사 가문의 독재와 부패, 사회주의 좌파 반군의 게릴라전, 마약 유통 중간지대…. 이 혼란 속에 니카라과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됐다.

1979년 소모사 가문의 50년 독재를 끝장낸 인물이 바로 다니엘 오르테가 현 대통령이다. 산속에 숨어 반독재 게릴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을 이끌던 그는 그해 소모사 정권을 무너뜨리고 니카라과 최초의 민주적 선거를 치르게 했다. 니카라과 제1당이 된 FSLN의 지도자로 실질적인 국가수반 역할을 맡았다. 1984년 오르테가는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오르테가야 말로 중미 유일의 민주주의 옹호자”라고 할 정도로 그의 추종자였다.

그랬던 오르테가가 자신이 목숨까지 걸고 저항했던 소모사 정권과 똑같은 행태를 보이며 악명 높은 독재자로 변신했다. 외신들은 8일 전날 치러진 니카라과 대선에서 오르테가 현 대통령(75)과 부인인 로사리아 무리요 부통령(70)의 4연임이 확실시 된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오르테가는 1990년 대선 패배후 17년간 절치부심하다 2007년 재집권에 성공했고, 이번에 4연임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오르테가는 소모사 정권과 똑같이 정적과 반대세력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지난 6월부터 유력 대선주자 7명을 포함한 야권 인사들을 40명 가까이 무더기로 체포했다.

FSLN은 혁명가 아우구스토 세사르 산디노를 추앙하는 좌파 정치세력이다. 직접 쿠바에서 사회주의 게릴라 훈련을 받았던 오르테가는 1977년 산디노의 모계 혈통인 무리요 현 부통령을 만나 7명의 자녀를 낳았다. 영국 스위스에서 유학한 엘리트이자 진보 시인인 무리요는 오르테가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펼쳐왔다.

재집권 이후 다시는 권력을 우파에 빼앗기지 않겠다고 결심한 오르테가에게 장기집권 플랜과 반대세력 제거의 세부전략을 짜준 사람이 바로 무리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정략과 빠른 두뇌회전을 가진 무리요가 바로 오르테가의 오른팔이자 좌파 독재권력을 유지하는 브레인이라고 전했다.

NYT는 “한때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저명한 진보 정치인이었던 오르테가의 타락은 중남미의 정치적 혼란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잣대”라며 “중남미가 해결해야 하는 최대의 당면과제는 체제나 정치성향이 아닌 정경유착과 반민주적 탄압”이라고 평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