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올드미디어로 불리지만 1990년대만 해도 신문·방송사는 나름 첨단기업이었다. 무겁고 투박했지만 당시 기자처럼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직업은 흔치 않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저널리즘을 배제하고 산업적 측면에서만 보면 신문·방송사는 사양산업군에 꼽힐 정도로 그 위상이 하락했다.
돌아보면 올드미디어들은 기술변화에 대한 적응속도가 더뎠다. 특히 플랫폼 비즈니스 시대의 도래를 예측하지 못했다.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닷컴시대가 본격화한 1990년대 후반부터 언론사들은 인터넷에 공을 들였다. 몇몇 신문사 웹사이트 방문자 수는 포털 사이트보다 많았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네이버가 언론사들의 뉴스를 모아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자연스레 뉴스 플랫폼이 된 포털 사이트에 신문·방송사들은 종속돼 갔다. 플랫폼의 위력을 뒤늦게 실감한 올드미디어들은 정당한 콘텐츠 제공 대가를 요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후 포털의 뉴스 서비스 정책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게 언론사들의 생존전략이 돼가는 분위기마저 생겨났다.
플랫폼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곳은 올드미디어뿐만 아니다. SNS의 원조 격인 미니홈피 ‘싸이월드’는 2000년대 중반까지 말 그대로 국민 서비스였다. 가입자 수가 3200만명에 달했고, ‘도토리’ 판매 등 성과로 히트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싸이월드는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PC에서 모바일로 플랫폼이 이동하면서 SNS 시장이 빠르게 재편됐지만, 싸이월드는 PC 중심 서비스에만 의존하다 외면받은 것이다.
국내외 증시 시가총액 순위 상위권에 포진한 네이버, 카카오, 쿠팡,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은 30년 전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 모두 플랫폼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편리성을 앞세운 서비스로 무장한 플랫폼 기업들은 초기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사용자를 늘리는 식으로 경쟁하다 서서히 인접 산업을 종속시키는 양상으로 발전해 왔다.
이들은 혁신 기업으로 불리지만 스스로 개발한 기술이 없다. 이미 존재하는 디지털 기술을 근간으로 산업이나 시장 가치사슬을 혁신한 기업일 뿐이다. 빅데이터·플랫폼 경제 전문가인 이경배 섹터나인 대표는 최근 관훈클럽 세미나에서 “새벽 배송의 원조가 누구였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신문사들은 수십 년 전부터 새벽 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새벽에 신문과 함께 식품을 배달할 생각을 왜 못했을까’라는 데 필자의 생각이 미치자 아차 싶었다. 모바일과 새벽 배송을 묶은 유통 플랫폼 비즈니스가 최근 각광받고 있지만, 사실 신문사들도 플랫폼 비즈니스 기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이 모바일 유튜브 등 플랫폼에 안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런데 시장은 새 플랫폼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더 주목한다. 바로 메타버스(초월 가상세계)다. 일찍이 차세대 거대 시장으로 메타버스를 낙점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아예 회사 이름을 메타로 바꿔버렸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술이 플랫폼으로 기능을 하기에 충분히 발전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플랫폼의 무게추를 옮기기에는 아직 메타버스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 시대는 이미 눈앞에 와 있는 듯하다. 벼락부자가 된 유튜버 사연이 보도된 후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자리 잡았듯 국내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월 1500만원 수익을 낸 크리에이터 얘기가 벌써부터 화제다. 새로운 생태계가 탄생하고 있는 것인데 누구에겐 기회가, 누구에겐 위기가 될 것이다.
한장희 편집국 부국장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