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을 앞둔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강한’ 금감원에서 ‘친절한’ 금감원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4대 금융지주 등 금융권은 남몰래 미소를 짓고 있는 반면 금감원 내부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지난 8월 정 원장의 취임 일성은 ‘소통’이었다. 정 원장은 지난 3일 금융지주 회장단과 간담회를 갖고 “금융환경 변화에 맞춰 금융사에 대한 검사체계를 유연한 대응 및 검사자원의 효율적 활용에 맞춰 개편하겠다”고 말했다. 사후처리·제재보다는 예방적 목적의 검사를 운영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금감원은 이달 예정됐던 우리금융지주의 종합검사도 연기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정(鄭)원장이 아니라 (금융회사에게 정을 주는) ‘정(情) 원장’이 왔다”면서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7일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새로 개편될 체제가 라임·옵티머스같은 사고를 막아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안 그래도 금융 사건·사고가 터지면 ‘금감원 책임론’이 끊이질 않는데, 기업 친화적 기조가 굳어지면 결국 신뢰를 잃는 건 내부 직원들 아니냐”고 전했다.
2019년 부활한 금융회사 종합검사가 축소 혹은 폐지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는 종합검사는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공포의 대상이다. 종합검사는 지난 2015년 금융회사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폐지됐다가 대형 금융사고가 잇따르자 2019년 부활했다.
정 원장의 행보에 시민단체 역시 들고 일어섰다. 참여연대는 지난 4일 논평을 내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기관장이 본연의 목적도 잊은 채 부적절한 발언을 일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도 “4∼5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종합검사마저 약화되면 금융지주 경영진의 전횡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