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로봇 학대 논란 유감

입력 2021-11-08 04:06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이 빼앗게 될 인간의 일자리는 노동집약적 생산 현장이 먼저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24시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고, 고장만 없다면 인간보다 효율성이 뛰어나다. 고용주 입장에선 초기 투자 비용이 들지만 임금을 줄 필요도 없고, 노조 결성도 하지 않을 테니 관리도 수월하다.

그런데 요즘 벌어지는 일을 보면 노동 분야보다 엔터테인먼트쪽에서 인간이 먼저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가상인간 로지는 올해만 벌써 여러 편의 광고를 찍었다. 벌어들인 광고수익만 1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생활로 물의를 빚을 일도, 학교폭력을 저질렀다는 논란에도 휩싸일 일이 없다. 아예 가상인간으로 아이돌 그룹을 만들겠다는 곳도 나올 정도다. 가상인간을 만들고 관리하는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겠지만 기존 연예인과 연예기획사는 서서히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창의적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분야가 마지막까지 인간의 영역이 될 거라는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 인간을 어설프게 닮으면 불쾌감을 느낀다는 ‘불쾌한 골짜기’는 이미 기술적으로 극복했다. 피부의 질감까지 인간과 비슷하게 만드는 기술력뿐 아니라 SNS 등을 통해 소통하며 캐릭터를 구축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단순 노동 영역에서도 인간을 대체하려는 시도가 거의 목전까지 와 있다. 국내에도 서빙 로봇을 도입한 식당이 등장하고 있고, 로봇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들어주는 곳도 존재한다. 아마존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은 드론 배송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음식 배달 로봇도 시범운행 중이다. 삼성 현대차 LG 등 국내 주요 대기업도 로봇을 출시했거나 준비 중이다. 로봇은 초반에는 인간의 조력자 위치에 서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인간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로봇으로 인간의 노동이 소멸되는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21 로보월드’에서 로봇을 굴려 넘어뜨린 것을 두고 날 선 공방이 이어졌다. 야당에서는 이 후보가 로봇을 과격하게 다뤘다면서 인성까지 거론했다. 이 후보는 로봇 성능 검증을 위한 테스트라고 해명했다. 양쪽 모두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 나라의 미래를 이끌고 갈 지도자를 둘러싸고 벌일 논쟁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유튜브를 검색해보면 로봇 개발자들이 잘 걸어 다니는 로봇을 발로 차거나 밀어서 넘어뜨리는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인간이나 동물 형태의 로봇에서 중요한 건 복원력이다. 이런 로봇을 현장에 투입해 쓰려면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인간처럼 잘 대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논쟁은 로봇을 다루는 대선 후보의 인성 문제를 거론할 게 아니라 로봇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정책 비전이 뭔지를 묻는 쪽으로 갔어야 했다. 앞으로 5년은 로봇이 인간의 삶에 더 깊이 들어오게 될 것이 분명하다. 로봇 때문에 인간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경우 기본소득 도입 여부 등 경제적인 문제부터 인간을 닮은 로봇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철학적 질문도 해야 한다.

이번 대선을 ‘비호감 대선’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어느 쪽도 인간적인 매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일 테다. 대통령 선거가 인기투표가 돼서도 안 될 일이다. 여야의 대선 후보가 이제는 결정된 만큼 앞으로 남은 기간에는 미래 청사진을 누가 더 잘 그리고 있는지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누가 알겠는가. 언젠가 정치인도 가상인간이나 로봇이 대신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