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1일 국회 법사위원회 국정감사장. 검찰 수뇌부의 국가정보원 댓글수사 외압을 폭로한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은 “검찰 조직을 대단히 사랑하고 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후보의 폭로는 ‘항명 파동’이라 불리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리고 8년 뒤인 2021년 11월 5일 그는 제1야당의 대선 후보로 우뚝 섰다. 파란만장했던 26년 검사 생활을 보낸 그의 인생에서 최대 변곡점은 ‘조국 수사’였다.
윤 후보는 1961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정자 이화여대 교수 부부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덕분에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부친 윤 교수가 충남 공주 출신이라 ‘충청 대망론’과도 연결이 된다.
윤 후보는 서울 충암고를 졸업하고 1979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5·18민주화운동 직전 서울대 모의재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뒤 외가가 있던 강원도 강릉으로 석달 동안 피신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사법고시 ‘9수’ 끝에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변호사 생활을 1년 했으나 “검찰청 짜장면 냄새가 그립다”면서 검찰에 복귀했다. 특수통 검사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의 인생은 박근혜정부 초기였던 2013년 4월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을 맡으면서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이 사건은 국정원 심리정보국 요원들이 인터넷에 댓글을 조직적으로 남기면서 2012년 대선에 개입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 후보는 윗선의 반대에도 용의선상에 오른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하며 수사를 이끌었다. 윤 후보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대선 승리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수사를 강행하면서 박근혜정부의 엄청난 미움을 샀다. 연이은 좌천성 인사로 4년을 떠돌았다. 대구고검 근무 당시 윤 후보가 점심을 혼자 먹어야 할 만큼 외톨이였다고 한다.
윤 후보는 대한민국을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특검 수사팀장으로 임명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는 문재인정부 들어 ‘촛불 혁명’의 공신으로 평가받았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19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발탁했다.
그는 적폐청산 수사를 이끌면서 박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구속시켰다. 선배들을 제친 그의 승진 가도는 거침이 없었고, 2019년 6월에 검찰총장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임명장 수여식에서 그에게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부르면서 애정과 신뢰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살아있는 권력과 또다시 충돌했다. 윤 후보는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당부를 행동으로 옮겼다. 윤 후보는 조국 전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자, 조 전 장관과 그의 가족들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전방위적인 수사를 펼쳤다.
윤 후보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사건 등도 파헤쳤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도 구속시켰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취임 이후 1년 여간 이어진 ‘추·윤 갈등’ 사태로 윤 후보는 문재인정부와 완전히 결별했다. 윤 후보에 대한 수사배제, 정직 처분 등이 이어졌으나 오히려 그의 정치적 맷집만 커졌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윤 후보를 대선 후보로 만든 것은 문재인정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권과 거리를 뒀던 윤 후보는 지난해 10월 대검 국감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정계 입문 가능성을 시사했다. ‘임기를 마치고 나면 정치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의에 윤 후보는 “검찰총장으로서 소임을 다 마치고나면 우리 사회와 국민들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답한 것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후보를 향해 “별의 순간이 왔다”고 윤 후보를 뛰워 줬다. 윤 후보는 검찰총장 임기가 4개월여 남았던 지난 3월 4일 사의를 표명했다. 물밑에서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며 세력을 꾸렸던 그는 지난 6월 2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어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 야당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롤러코스터 같은 검사 생활을 보냈던 그는 내년 3월 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대권을 놓고 맞붙는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